한겨울 밤에 물냉면

2007. 12. 28. 16:38일기

<한겨울 밤에 물냉면>
2007.12.27 목요일

저녁 8시, 방학을 맞이하여 아빠가 마침 배도 출출한데, 특별히 냉면을 사주겠다고 하셨다. 우리는 잠바를 입고 신났다고, 집 앞으로 나갔다. 엄마는 추운데 무슨 냉면이냐고 툴툴거리셨다. 영우도 냉면은 싫고 햄버거는 안 되겠느냐고 졸랐다. 아빠는 힘을 주어 "보통 냉면이 아니야. 특별 세일하는 오장동 함흥냉면이라구!" 하셨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으리으리한 고깃집 앞이었다. 영우는 "와! 갈비집이다!" 하며 좋아라고 펄쩍 뛰었다. 엄마는 "어디가 세일이야?" 하며 기웃기웃하셨다. 그때 아빠가 "봐! 저기, 냉면 세일!" 하며 입구에 붙어 있는 행사 세일 메뉴를 손가락으로 찾아내셨다.

고깃집 문을 열자마자 지글지글 고기 굽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사람들도 바글바글 불판 앞에 둘러앉아 집게로 고기를 뒤집어가며 맛있게 구워 먹고 있었다. 나는 벌써 입가에 침이 줄줄 고였다. 종업원들이 날렵하게 우리를 자리로 안내하면서 메뉴판과 물잔을 척척 갖다주었다. 영우가 "고기! 고기!" 하면서 재촉하는 동안, 아빠는 메뉴판을 대충 살피시는 척하더니 결심했다는 듯, "물냉면 세 그릇 주세요!"하고 큰소리로 말했다. 엄마도 "헤헤, 저녁을 먹고 와서요." 하셨다.

물냉면이 나왔는데도 영우는 입을 쑥 내밀고 눈을 부릅뜨고 있었고, 옆자리에서는 어떤 아빠와 아들이 고기를 잔뜩 시켜놓고 와구와구 먹고 있었다. "옆은 보지 말고 먹어라!" 하시며 아빠가 먼저 젓가락으로 냉면을 집어 주루룩 삼키셨다. 나도 안 되겠다싶어, "영우야, 먹어봐! 얼마나 시원하고 맛있는데!"하고는 냉면을 한 움큼 떠서 입안으로 쑤셔 넣었다.

그런데 한번 넣은 면발이 끊기질 않고 계속 실타래처럼 넘어가, 목 안에서 칵하고 걸리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면발을 밖으로 잡아당겨 끌어내느라 애를 먹었는데, 내가 면발을 뽑아내는 기계 꼴이 된 것 같아 우습기도 하였다. 그때, 종업원 아줌마들이 달려들어 가위로 면발을 끊어주시면서, "아이구 저런, 안됐어라!" 하는 것이었다. 나는 "휴, 고맙습니다. 죽는 줄 알았어요!" 하고 목을 만졌다.

그 뒤로 아줌마들께서 고구마 샐러드랑 계란찜이랑 호박 식혜를 듬뿍 갖다주셨다. 다 먹고 "맛있게 잘 먹었어요!" 하고 인사하며 나오는데, 바깥에 촉촉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차가운 물냉면을 먹은데다, 차가운 비바람까지 맞으니 뼛속까지 으들들 떨렸다. 그래서 우리는 잠바에 달린 모자를 뒤집어쓰고, 집까지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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