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가지마!

2007. 11. 26. 10:17일기

<얘들아, 가지마!>
2007.11.25 일요일

오늘은 내가 큰맘 먹고 반 친구들을 초대하였다. 원래는 우석이, 우석이 동생 서진이, 민석이, 현승이, 재완이, 낙건이를 초대하려고 했는데, 우석이는 갑자기 어디 갔는지 전화 연락도 안 되고, 집에도 없었고, 민석이는 목욕탕 간다고 못 왔다. 그래서, 현승이, 재완이, 낙건이만 우리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고 놀다가 집안에만 있는 것이 답답해서, 공놀이를 하려고, 축구공을 가지고 공원으로 나갔다. 아이들은 풀밭에서 놀고 싶어 했는데, 내가 청소년 수련관 앞에 있는 운동장에서 놀자고 우겨서 아이들을 운동장으로 데려갔다. 그런데 운동장에서는 이미 동네 형들이 자리를 차지했고, 축구 연습이 한창이었다. 현승이가 "역시나 그럴 줄 알았어!" 하면서, 모두 툴툴거리며 발걸음을 돌렸다.

 우리는 공원 언덕 위에 있는 정자 마당으로 올라갔다. 정자로 오르는 나무 계단을 헉헉거리며 밟고 있을 때, 갑자기 낙건이가 방향을 확 바꾸어 계단 아래로 뛰어가면서 "얘들아, 안녕!"하고는 손을 흔들며 자기 집 쪽으로 사라져버렸다. 현승이가 "아이, 저런 녀석이 있냐?" 하면서 어이없어했고, 나는 사막을 탐험하던 동료 대원이 갑자기 나타난 모래 늪으로 눈 깜박할 사이에 빠져 버린 것처럼 허무했다.

정자까지 다 올라서 축구 골대를 할만한 물건을 찾아보다가 나무 두 그루가 마주 보고 있는 자리를 골대로 정했다. 그런데 나는 가위 바위 보에 왜 그리도 재주가 없는지, 계속 골키퍼만 맡게 되었다. 게다가 공을 무서워해, 재완이가 세게 공을 차자 마치 눈사태가 나서 공이 무슨 거대한 눈덩이라도 되어 굴러오는 것처럼, 두 손으로 눈을 가리고 머리를 흔들며 "워어어오~"하고 괴성을 질렀다.
 
현승이가 찰 때도 "워어어억~"하고 소리만 지르다 무릎에 공을 팍 맞고 놓쳐버렸다. 어렵게 공을 찰 기회가 생겼을 때도 통통통 차고 다니니까, 재완이가 "아, 정말 못 봐주겠네! 빨리 좀 해라!" 하며 투덜거렸고, 현승이도 "사람들은 참 이상해. 쟤가 거북이보다 더 느린데, 왜 거북이를 제일 느리다고 그러는거야? "하며 맞장구를 쳤다.

내가 부끄럽고 미안해서 어설프게 웃고 있는 사이, 현승이랑 재완이가 험악하게 탕탕 공을 차고 받으며 둘이서만 놀았다. 나는 섭섭해서 공을 빼앗아 두 손으로 안고 달렸다. 그랬더니 둘 다"와! 너, 반칙이야!" 하며 방방 뛰었다. 결국, 현승이와 재완이는 슬그머니 집에 가겠다고 말했다.

나는 현승이 옷을 붙잡으며 "가지마! 응?" 하였고, 재완이에게도 "우리 집에 들어가 더 놀다 가자!" 하며 달래듯이 애원했지만, 현승이는 머리 깎아야 한다고 그랬고, 재완이도 집에 가서 뭐 해야 된다고 그랬다. 내가 끈덕지게 매달리며 가지 말라고 하니까, 애들은 너네 집이 너무 덥다는 둥, 핑계를 대가며 거절하였다. 나는 할 수 없이 입을 쑥 내밀고 삐진 말투로 "그래, 가라."하고 먼저 돌아서서 걸었다.

몇 발짝을 걸었을 때 뒤에서 애들이 소리쳤다. "상우야, 잘 가! 오늘 맛있게 먹고 잘 놀았다!" 하는 거였다. "그래, 다음에 또 놀자." 하며 시무룩히 나무 계단을 내려오는데, 또 뒤에서"야, 그 공 일루 잠깐 던져 봐!" 하는 것을 못들은 채 내려오다가 정말로 친구들이 가버린 것을 알고, 나는 울먹울먹 속으로 중얼거리며 돌아왔다. '얘들아, 잘 가! 다음엔 놓치지 않도록 잘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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