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gwooDiary.com(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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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루치아노 파바로티
2009.02.28 토요일 드디어 피아노 학원 연주회 날이 열렸다. 점심을 먹고 학원에 모여 모두 버스를 타고 양주 문화 예술 회관으로 갔다. 햇볕은 따습고 바람은 쌀쌀했다. 공연장에 들어가니 내가 가장 고민하던 문제가 닥쳐왔다. 바로 연주할 때 입을 연미복을 갈아입는 것이었다. 며칠 전부터 나는 '연주회 때 입을 옷에, 내 몸에 맞는 사이즈가 있을까?' 궁금했다. 지난해 피아노 학원 연주회에서는 겨우 맞는 옷을 찾기는 하였지만, 연주회 내내 너무 꽉 껴 숨이 막혔었는데... 남자 아이들은 공연장 복도에서 디자이너 아줌마가 옷을 나눠주셨다. 까만 바지는 그런대로 잘 맞고 시원하고 느낌도 비단처럼 매끄러웠다. 윗옷을 벗으려는데, 그때 여자 아이들이 우르르 무엇을 물어보려고 몰려와, 나는 남자 화장실로 가서..
2009.03.03 -
욕하는 아기
2009.02.22 일요일 일요일 저녁, 아빠 친구 가족을 만나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우리는 어른들이 이야기하는 틈을 타서 밥을 대충 먹고, 식당 안에 있는 놀이방 게임기 앞에서 기웃거렸다. 오락기 앞에는 아이들이 전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신나게 타다다닥~ 버튼을 두드리고 있었다. 아쉬운 대로 구경이라도 하려고, 게임을 하는 아이 자리 뒤에 바짝 파고들어 앉았는데, 바로 옆에서 째지는 소리가 들렸다. "야 이, 병신아, 꺼져! 여기는 내 자리야!" 그 소리의 주인공은 아직 걸음걸이와 몸짓도 엉성한 아기였다. 한 3살쯤 되었을까? 우리 바로 옆자리에서 어떤 중학교 2학년 형아가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조그만 아기가 비키라고 호통을 치는 것이다. 그것도 욕을 하면서! 중학교 형아는 아기를 보고 어이가 ..
2009.02.25 -
트리케라톱스와의 대화
2009.02.21 토요일 '어! 여기는 어디지?' 나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펴보았다. 난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남양주 자연사 박물관 옥상에서, 커다란 트리케라톱스 모형을 쓰다듬어주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는 벌써 봄이 왔는지, 사방에 길고 빽빽한 벚꽃 나무 투성이다. 눈처럼 흩날리는 꽃잎을 따라, 엄청나게 넓은 초록색 풀밭이 펼쳐지고, 그리고 그 앞에는 햇빛을 받아 살금살금 떨리는 거대한 호수가 있었다. 나는 벚나무 사이에 숨어 한동안 몸을 움직이지 않다가, 두려움 반, 호기심 반으로 앞으로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이렇게 나는 낯설지만 익숙한 풍경 속을 한참 동안 헤매고 다녔다. 가도 가도 호수를 낀 풀밭이 끝나지 않아서 "음~ 여긴 경치가 이렇게 좋은데, 왜 사람이 없는 걸까?" 하며 한숨을 쉬..
2009.02.24 -
선생님의 노래
2009.02.18 수요일 어제 담임 선생님께서 외국 연수에서 돌아오셨다. 4학년이 끝나기 전에 선생님 얼굴을 꼭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었는데. 갑자기 돌아오셔서 기쁨보다 얼얼함이 앞섰다. 선생님도 그러셨을까? 아주 먼 길을 달려와 '짠~' 하고 나타나셔서, 교탁 앞에 앉아 태연하게 일하시는 선생님 얼굴은 예전처럼 무표정했고, 입가엔 풀처럼 까칠까칠한 수염이 돋으셨다. 마치 선생님은 우리 곁을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오늘 종업식을 맞았다. 청소를 마치고 성적표를 나누어 받고 모두 자리에 앉은 다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여러분이 앞으로 친구로 만날 순 있겠지만, 4학년 송화 반이라는 이름 아래 모여서, 선생님과 함께 4학년 생활을 하는 일은 이제 없을 것입니..
2009.02.20 -
차 따르는 재미
2009.02.15 일요일 우리 가족은 오랜만에 시내 중국집으로 자장면을 먹으러 갔다. 우리는 벽면에 일자로 붙어 있는 자리 중, 맨 구석 창가 자리를 얻었다. 그곳은 옆 손님들과 너무 딱 붙은 비좁은 자리였다. 외투를 벗어놓을 자리가 없어, 엄마는 외투를 둘둘 말아 각자 등 뒤에 쿠션처럼 고이게 하셨다. 바로 내 옆엔 입가에 자장면 소스를 듬뿍 묻힌 어린 아기가, 나를 빙글빙글 재미있는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식사가 나오기 전, 물 대신 돼지 저금통 크기만 한 찻주전자가 나왔다. 검은색 바탕에, 붉은 나뭇잎 무늬가 있는 항아리 모양의 주전자였는데, 뚜껑 위에 얇은 손잡이도 있었다. 그리고 동그란 찻잔도 딸려 나왔다. 나는 불쑥 엄마, 아빠에게 차를 따라 드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오른손을 쭉 뻗어..
2009.02.17 -
나무 타기
2009.02.12 목요일 영우와 피아노 학원 차를 기다리는 동안, 놀이터 나무에 올라가 보았다. 그것은 굵은 나무를 원기둥 모양으로 가공해서 놀이터 안에 말뚝처럼 박아놓고, 몸통 여기저기에 도끼로 찍은 듯한 흠을 만들어, 그것을 잡거나 밟고 올라갈 수 있게 만든 거대한 놀잇감이었다. 나무의 감촉은 매끄러운 돌 같았다. 나는 먼저 왼발을 제일 낮은 틈에 딛고, 조금 더 높은 틈에 오른발을 디뎠다. 일단 그렇게 몇 번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해보았다. 그러자 요령이 붙었다. 나무 둥치를 안고 허리와, 등, 어깨 순서로, 뱀처럼 양쪽으로 번갈아 흔들며 올라가니, 발을 딛기가 더 쉬웠다. 정말로 새 알을 훔쳐 먹으려고 나무 위를 올라가는 뱀이 된 기분으로, 나는 신이 나서 어깨춤을 추듯이 더 심하게 몸을 흔들며 ..
2009.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