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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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돌아오면
2009.07.14 화요일 나는 요즘 태양이 없는 나라에 사는 기분이다. 집에서 조금만 나가면 보이는 옥수수밭이, 비를 이기지 못하고 축 늘어져 있고, 꿋꿋해 보이던 나무들도 옆으로 힘없이 쓰러져있고, 비바람에 꺾인 나뭇가지가 전깃줄에 대롱대롱 걸려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요즘엔 학교에서 돌아오면, 흠뻑 젖은 책가방에서 젖은 책들을 꺼내 마룻바닥에 쭉 늘어놓고 말리는 게, 급한 일이 되었다. 그리고 다음날이 되면 겨우 마른 책을 가방에 넣고, 다시 콜록콜록거리며 비를 맞고 학교로 간다. 우산은 더 비를 막아주지 못해 쓸모가 없어졌고, 지난주 비폭탄을 맞은 뒤로 걸린 심한 감기가, 계속 비를 맞으니까 거머리처럼 붙어 떨어지질 않는다. 우리는 온종일 내리는 쇠창살 같은 장맛비에 갇혀, 이 불쾌감과 ..
2009.07.15 -
물속을 걷다!
2009.07.09 목요일 오~ 이럴 수가! 세상에 이렇게 많은 비가 내리다니! 수업이 끝나고 학교 현관에서 신발을 갈아신으려던 나는, 엄청나게 내리는 비를 보고 순간 주춤하였다. 학교 밖은 우산을 써도 피할 수 없을 만큼 비가 사정없이 내리치고 있었다. 어젯밤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오늘 내내 멈추지 않고 쏟아졌고, 시간이 갈수록 더 강해지고 있다. "집은 괜찮나요? 혹시 떠내려가진 않았죠?" 나는 복도에 있는 학교 전화기로 집에 전화를 걸어 안전을 확인한 다음, 비와 맞서는 전사가 된 기분으로 학교를 나섰다. 교문으로 내려가는 언덕 위에서 보니 세상은 물바다였다. 도로, 인도 곳곳에 조금이라도 움푹 팬 자리는, 빗물이 흙탕물 호수처럼 고였고, 그 위로도 거친 빗물이 포봉 퐁 포봉~! 하고 운석처럼 ..
2009.07.11 -
책상에게 미안해!
2009.07.08 수요일 난 오늘 엄마에게 딱 걸렸다. 그동안 내 방을 청소하지 않고, 기말고사가 끝나면 정리하겠다고 얼렁뚱땅 미루어오다가, 결국 엄마를 폭발하게 한 것이다. 엄마는 쓰레기가 쌓여 날파리가 맴도는 내 책상을 부숴버릴 듯한 기세로 화를 내셨다. 나는 한바탕 혼이 난 다음, 묵묵히 내 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우선 내 책상을 한참 바라보다가, 흐음~하고 한숨을 쉬었다. 햇빛을 받지 못한 낡은 성 안에, 난쟁이들이 마구 타고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계단처럼, 책, 공책, 교과서, 종이 쪼가리, 휴지들이 겹쳐서 층층이 쌓여 있었고, 책더미 사이로 생긴 구멍에선 금방이라도 생쥐들이 들락날락할 것 같이 지저분했다. 나는 허리를 조금 굽혀서 책상을 자세히 살폈다. 그리고는 월요일마다 집앞에 재활용품..
2009.07.09 -
마이클 잭슨 - 불멸의 라이브
2009.07.04 토요일 늦은 밤, TV에서 란 프로를 보았다. 마이클 잭슨이 살아있을 때 했던, 유명한 공연이라고 해서 나는 열심히 감상하기 시작했다. 마이클 잭슨의 노래를 몇가지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제대로 된 공연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난 처음에 마이클 잭슨 노래보다 공연장에 사람들이 많은 것에 놀랐다. 마치 바다에 빠진 사람들이 살려달라고 손을 높이 들어 허우적대는 것처럼, 엄청난 사람 물결이 쳤고, 많은 사람들이 공연에 열광하다 쓰러져서, 힘없이 쑥쑥 뽑혀나가는 갈대처럼 들것에 실려나갔다. 마이클 잭슨은 여자인지 남자인지 언뜻 분간이 잘 안되었다. 긴 곱슬머리를 묶고, 곱상한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예쁘고 높은 목소리로 힘있게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었다. 두팔은 흐물흐물 문어처럼 자유롭게..
2009.07.06 -
불타는 토스트
2009.07.03 금요일 드디어 기말고사를 마치고, 나는 날개를 단 기분으로 학교 앞, 피아노 학원이 있는 상가 1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계를 보니 벌써 12시 15분, 지금 가서 줄을 서면 과연 먹을 수 있을까? 오늘 상가에서 '불타는 토스트'라는 가게가 문을 여는데, 개장하는 날 특별 이벤트로 낮 12시부터 선착순 200명까지 햄 토스트를 무료로 준다는 광고를, 아침부터 나는 눈여겨보았었다. 상가 앞엔 벌써 공짜 토스트를 먹으려는 사람들의 줄이 뱀처럼 길게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그 줄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이 아이들이었다. 이미 줄이 꽉 차 있어서, 나는 줄에 서야 할 지, 말아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은 채, 줄에 섰다 나갔다를 반복하였다. 그 사이에 우리 반 성환이와 인호가, 노릇하고 두툼한..
2009.07.05 -
산마을에 없는 것
2009.07.01 수요일 이틀 뒤면 있을 기말고사를 앞두고 나는 막바지 공부를 하였다. 사회 과목을 정리하다가 이라는 단원 중, 산촌에 관한 설명과 사진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지난 주말에, 아빠의 친한 친구 분들 가족과 문경새재란 곳으로 여행을 다녀왔는데, 그곳에서 보았던 산마을의 모습과 사진이 똑 닮았기 때문이다. 교과서에서 배우기를, 우리나라의 촌락은 농촌, 어촌, 산촌으로 나뉘어 있고, 그중 산촌이 경치가 제일 좋다고 했는데, 정말 그랬다. 내가 가는 곳마다 시원하고 푸른 속리산 자락이 그림처럼 쫓아오고, 계단식 논밭에 심어진 키다리 옥수수와 산마을 허수아비가 나를 열렬히 환영하듯, 뜨거운 바람에 추와아~ 흔들렸다. 내 입에서는 오직 "우와~!" 하는 탄성만 가슴 밑에서부터 팡팡 터졌다. 그런..
2009.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