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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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문외과 의사의 단호함
2013.09.25 수요일 얼굴이 씨뻘개지고 머리에서부터 식은땀이 지리릭~! 전기에 감전되듯 온몸으로 흘러내렸다. 눈앞은 캄캄해지고 머리는 차갑고 어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결국 나는 안 나오는 똥을 포기하고 변기 뚜껑을 닫았다. 점심 시간이 지나서야 간신히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선생님, 오늘 아파서 학교에 못 갔는데요, 진작 전화를 드렸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그래, 상우야, 어디가 아픈데?", "저... 치질 앓고 있던 게 도졌나 봐요. 너무 아파서..." "어~ 어... 그랬구나, 그럼 내일 결석계 가지고 오너라~" 선생님의 자상하고 차분한 목소리가 내 마음을 달래주었다. 난생 처음 가 보는 항문외과 병원 문을 열자, 카운터를 지키고 있는 간호사 아주머니께서 "오늘은 의사선생님께서 멀리..
2013.09.26 -
보름달과 두루미
2013.09.18 수요일 책상 앞에 오래 앉아있으니까 몸이 뻐근했는데 보름달이 무지 밝았다. 나는 밤 10시, 할머니와 할아버지께 "엄마와 영우와 함께 산책을 다녀 오겠습니다!" 하고 현관문을 나섰다. 바깥은 어둡고 캄캄했지만, 조용하게 걷기에는 시원하고 포근한 공기였다. 여기는 대구 달성군 화원읍 아파트 단지, 친할아버지께서 살고 계신 곳이다. 아파트 단지 후문 밖을 벗어나자 개천이 가운데 흐르는 산책로 겸, 놀이터가 바로 보인다. 나무 계단을 밟고 내려가 놀이터로 접어드니, 사박사박한 모래길에 걸음이 홀린 듯 척척 걸어진다. 개울가를 따라 잔잔하게 불어오는 밤바람을 맞으며, 나는 앞장 서 힘 있게 걸었다. 보폭을 넓혔다가 줄였다가, 한쪽 발을 들었다가 내렸다가, 뜀박질을 뛰었다가 주저앉았다 하며, ..
2013.09.21 -
가을 솜사탕
2013.09.07 토요일 오후 5시, 여의도 공원에 도착해 중앙 야외 무대를 찾았다. 동생 영우가 속한 매동초등학교 탈춤 동아리가 이제 막 공연을 시작하려고 하였다. 서울시에서 주관하는 무슨 행사라는데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 단지 아침에 영우가 "오늘 내 탈춤 공연 보러 올 거야? 올 거면 평생학습 축제장으로 와! 올 거야?" 되물었는데, 무뚝뚝한 소리로 "시간 없어." 했던 것이 기억 난다. 중간고사 준비로 시간을 쓰려 한 주말이었고, 초등학교 6학년 탈춤 공연을 내가 꼭 봐야되나 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엄마가 날 설득하셨다. 영우가 탈춤 공연에 참가하고 싶어 오디션을 봤는데, 학교 대표로 뽑혀서 대회에 출전하는 거라고, 여름내내 땀 흘려 연습한 공연인데 함께 가서 축하해 주는 게 좋지 않겠니? 하..
2013.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