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탕물(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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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맛조개
2009.07.25 토요일 우리 가족은 새벽에 서해안에 도착했다. 방학이라고 마주치기만 하면 다투는 영우와 나 때문에, 엄마는 많이 지치고 화가 나셨다. 그래서 출발하기 전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가서 지옥 훈련이다! 밥도 너희가 하고 각오해랏!" 마침 서해안은 휴가철을 맞이하여, 물고기 잡기와 조개잡이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텐트를 치고 조금 잔 다음, 아침으로 라면을 끓여 먹고, 조개를 잡으러 갯벌로 들어갔다. 나는 조개를 잡기 전에 바다를 느끼려고, 찰방찰방 물을 차고 들어가 발을 담갔다. 그러자 언젠가 먹어본 아이스크림 중에, 위는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이고 밑은 차갑지만 부드러운 가루 얼음이 깔린 아이스크림이 떠올랐다. 갯벌은 그 가루 얼음처럼 보송보송했다. 갯벌을 보드득 밟으며..
2009.07.28 -
물속을 걷다!
2009.07.09 목요일 오~ 이럴 수가! 세상에 이렇게 많은 비가 내리다니! 수업이 끝나고 학교 현관에서 신발을 갈아신으려던 나는, 엄청나게 내리는 비를 보고 순간 주춤하였다. 학교 밖은 우산을 써도 피할 수 없을 만큼 비가 사정없이 내리치고 있었다. 어젯밤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오늘 내내 멈추지 않고 쏟아졌고, 시간이 갈수록 더 강해지고 있다. "집은 괜찮나요? 혹시 떠내려가진 않았죠?" 나는 복도에 있는 학교 전화기로 집에 전화를 걸어 안전을 확인한 다음, 비와 맞서는 전사가 된 기분으로 학교를 나섰다. 교문으로 내려가는 언덕 위에서 보니 세상은 물바다였다. 도로, 인도 곳곳에 조금이라도 움푹 팬 자리는, 빗물이 흙탕물 호수처럼 고였고, 그 위로도 거친 빗물이 포봉 퐁 포봉~! 하고 운석처럼 ..
2009.07.11 -
개미들이 떠내려가는 골짜기
2009.06.20 토요일 비바람이 심하게 몰아치는 하교길, 간신히 붙잡고 오던 낡은 우산 살이 휘어지면서, 우산도 확 뒤집혔다. 내 몸은 더 젖을 것이 없을 만큼 스펀지 상태였다. 이제 물에 잠긴 놀이터 맞은 편 인도를 따라 오른쪽으로 돌면, 오르막이 보이고, 이 오르막만 넘으면 집 앞에 도착할 것이다. 이 오르막길에서는, 위쪽에서부터 흙길에 고인 듯한 빗물이 아래로 쉬지 않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폭이 좁게 흐르는 물줄기가, 마치 암벽들 사이로 흐르는 물길처럼 거침없었다. 그래, 그것은 세차게 물이 흐르는 깊고 긴 산골짜기와도 닮았다. 그런데 무언가 까만 점 같은 것들이 물길에 섞여 동동거렸다. 몸을 수그려 자세히 보니, 그 물길과 물길 주위로, 미처 비를 피해 집으로 들어가지 못한 개미들이 허둥대..
2009.06.21 -
개학을 한 뒤 달라진 것
2009.02.05 목요일 오늘 아침에는 하얀 눈이, 소금을 솔솔 뿌리는 것처럼 내렸다. 눈은 잠바에 닿아도 스르르 녹지 않고, 통통 튕겨나갔다. 아직은 어두침침한 길, 하나, 둘씩 소금 눈을 맞으며 걷던 아이들이 자꾸 모이고 모여서, 연어가 강을 거슬러 올라가듯 학교 가는 길은 붐비고 활기 넘쳤다. 어제 우리 학교는 개학을 했다. 아이들은 명절날 고향에 돌아온 것처럼 맘 놓고 떠든다. 교실 창문으로 쉬지 않고 흘러나오는 소리가, 짹째재잭 봄을 맞은 새소리 같다. 우리 반은 담임 선생님께서 어학연수 갔다가 아직 돌아오지 않으셔서, 체육 선생님이 임시 담임 선생님을 맡으셨다. 나는 우리 선생님을 볼 수 없어 마음 한쪽이 너무 쓰렸지만, 꾹 참고 선생님의 이름을 먹칠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임시 선생님의 수업..
2009.02.06 -
구사일생
2008.01.21 월요일 피아노 학원 수업을 마치고, 선생님께서 잘했다고 주신 젤리를 냠냠 먹으며 돌아올 때, 공원에 쌓인 눈이 나뭇가지로 새어들어 오는 햇살을 받으며 짠 녹고 있었다. 그러자 공원 길 전체가 이제 막 녹기 시작한 거대한 얼음 덩어리처럼 꿈틀거리는 것 같았고 무지 미끄러웠다. 나는 문득, 지금은 방학이라 한동안 가보지 않았지만, 학교 다닐 때 우석이랑 잘 다녔던 우리만의 지름길인 가파른 언덕 위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언덕은 풀이 많고 몹시 경사가 험해서, 한번 발을 내딛으면 중력의 작용 때문에 높은 곳에서 아래로 쉬지 않고 굴러 떨어지는 사과처럼, 단숨에 와다다다 멈추지 않고 아래로 뛰어내려 와, 우리 집과 우석이네로 갈라지는 길 위에 떨어지게 된다. 언덕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하..
2008.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