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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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아슬 용배
2009.06.06 토요일 한바탕 비가 오고 난 산정호수는, 오리 배를 타러 끊임없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호수는 산빛이 비쳐 완전히 초록색이었다. 물살이 아주 세 보였고, 호수 괴물이 살고 있을 것처럼 멋지고도 으스스한 분위기가 났다. 나랑 영우는 안전 조끼를 입고 오리 배 줄에 서서, 두근두근 차례를 기다렸다. 그런데 우리 앞으로 온 것은 오리 배가 아니라, 파란색 몸통에 머리가 용모양인 '용배'였다. 어차피 겉모양만 조금 다르고 똑같은 배라서 우리는 그냥 그것을 타기로 했다. 영우랑 나는 후닥닥 조종석에 들어가 앉았는데, 안전요원 아저씨가 무게 균형을 맞추기 위해, 조종석에 어른이 한 명 앉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앞에 앉겠다고 영우와 실랑이를 벌이다가, 가위 바위 보를 해서 할 수 없이 뒷자리에 ..
2009.06.08 -
5학년의 첫 종소리
2009.03.02 월요일 내가 처음 교실에 들어가니 뜻밖에 교실 안이 어두웠다. 그 이유는 창밖에 바로 산이 있어 햇빛이 들지 않아서였다. 게다가 새 교실은 작년에 미술실이었던 자리라서 바닥이 차가운 돌 바닥이었다. 5학년 첫날 아침 교실은 으스스했다. 나는 가운데 자리 셋째 줄에 앉아, 책상 위를 손가락으로 투둑둑 투둑둑 피아노 치는 시늉을 하며 선생님을 기다렸다. 갑자기 '드드드들~' 문이 열리더니, 라면처럼 머리가 꼬불꼬불하고 황금색 안경을 낀, 조금 늙어보이는 여선생님이 들어오셨다. 나는 순간적으로 엇~ 하고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려고 하는데, 교실을 휘둘러보고는 바로 나가셨다. 몇 분 뒤, 조금 전보다 훨씬 젊은 여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이번에는 나가지 않고 교탁 앞에 한참을 서 계셨다. 아직 교..
2009.03.05 -
결핵을 조심해!
2008.11.19 수요일 보건 수업 시간에 우리는 호흡기 질병에 대해 공부를 하였다. 1학기 말부터 매주 수요일 3교시에 하는 이 수업을 나는 기다린다. 비록 기초 의학 지식이지만, 사람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의학이 나의 마음을 뛰게 하고, 내가 마치 의사 수련생이 된 듯한 착각이 드니까! 모든 호흡기 질병은, 감기와 증상이 비슷해서 처음엔 잘 알아볼 수가 없지만, 풍진, 수두, 볼거리, 유행성 감기, 폐렴, 결핵 등 여러 종류가 있다. 선생님께서 이를 컴퓨터로 보여주시고 설명해주시면, 우리는 열심히 그것을 또각또각 받아 적었다. 갑자기 선생님께서 결핵을 설명하실 때, 다른 질병을 설명하실 때랑 목소리가 좀 달라지셨다. 심각한 표정으로 "결핵은 이 질병 중에 가장 위험한 질병이야. 한번 걸리면 최소한..
2008.11.21 -
안개를 헤치며
2008.10.09 목요일 오늘 아침은 안개 때문에 숨이 막혔다. 아파트 입구를 벗어나 곧게 뻗은 통학 길을 따라 걷는데, 차가 다니는 길을 끼고 오른쪽에 마주한 아파트 3,4단지가 아예 보이지 않았다. 눈을 뜨고 있어도 답답했다. 안개 괴물이 세상을 집어삼킨 건 아닐까? 자세히 보니 아파트 아랫부분은 조금 보였지만, 안개가 많이 낀 아파트 위쪽은, 뿌연 구름이 걸려 버린 것처럼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컴퓨터 게임에서 본 하늘성 (제9의 사도 바칼이, 하늘 세상을 지배하려고, 바다 마을에서 계단을 이어서 하늘까지 쌓아올린 탑) 같았다. 사방을 둘러싼 안개속에서 학교 가는 아이들의 소리가 두런두런 들려왔다. "와~ 안개 정말 짙다! 이거 천재지변 아니야?" 바로 코앞에 아이는 보였지만, 멀리 앞서가는..
2008.10.10 -
복도 청소
2008.08.22 금요일 며칠 뒤 개학을 앞두고, 오늘은 우리 반이 학교에 청소하러 가는 날이다. 나는 오랜만에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맘이 들떠서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우렁차게 외치고 집을 나섰다. 밖에는 나무젓가락처럼 길고 굵은 빗줄기가 '타닥타닥' 땅을 후려치듯 내리고 있었고, 아직 세상은 어둠 속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나는 준비한 우산을 펼쳐서, 파란 우산 지붕을 머리 위에 이고 힘차게 다리를 쫙쫙 벌려 걸었다. 학교 가는 길엔 아무도 없었고, 정문 앞에 다다르니, 8시 30분에 정문 앞에서 만나기로 한 경훈이가 아직 나와 있지 않았다. 밤새 내린 비가 아침까지 그치지 않아 세상은 물에 잠긴 듯, 온통 축축하고 싸늘했다. 하늘은 퀘퀘한 담배 연기 색깔이었고, 가끔..
2008.08.26 -
나뭇잎 나라
2007.11.04 일요일 날씨도 좋고 햇빛이 아까워 우리 가족은 물과 김밥과 새우깡을 싸가지고 서둘러 공순영릉으로 갔다. 공순영릉에 가니 많은 가족들이 가을을 느끼려고 우리처럼 나무 냄새도 맡고 돗자리를 펴고 앉아 햇볕을 쬐고 있었다. 공순영릉 안의 산책 길은 노랑, 주황, 갈색, 황금 빛 나뭇잎들이 카페트처럼 촤르르 깔려 있었는데, 어떤 곳은 발이 움푹 빠지도록 쌓여서 혹시 수렁이 아닐까 겁이 나기도 하였다. 겁이 없는 영우는 온 공원 안을 내 세상이다 하고 벼룩이처럼 폴짝 폴짝 뛰어다녔다. 두 팔을 양 옆으로 날개처럼 펼치고 "부엉 부엉!" 외치며 뛰어다니는 영우의 모습이 숲의 왕자처럼 자유로워 보였다. 그 모습이 부러워 아픈 내 신세가 처량하게만 느껴졌고, 피톤 치드라도 마음껏 들이마시자고 코로 ..
2007.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