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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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낭콩과 채송화
2008.06.28 토요일 기말고사를 앞두고 나는 과학 과목 중 강낭콩 단원을 공부하였다. 그런데 공부를 하면서 문득 강낭콩의 한살이와 사람의 한평생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낭콩에 싹이 트고 줄기와 잎, 가지가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또 다른 씨앗을 남긴다. 이걸 사람의 한살이로 치면, 태어나고, 점점 자라나고 인생이 만발해지고, 자식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아무리 하찮게 보이고 값어치 없게 보일지라도, 생명이 처음 탄생할 때와 죽을 때까지의 과정이 모두 고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하느님이 신비해진다. 하느님은 가장 자신의 모습과 비슷하고 귀하게 만든 사람과, 말 못하고 단순한 식물의 한살이 과정을 똑같이 만드신 걸 보니, 공정하시구나! 순간 나는 2학년 때 썼..
2008.06.30 -
새해
2008.01.01 화요일 텔레비전 화면 구석에 작은 글씨로 50이라는 숫자가 떴다. 나는 그 숫자를 보고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2007년 마지막 카운트 다운이었다. 텔레비전 화면에는 보신각에 모셔진 커다란 종이 나타났고, 그 앞에 많은 사람이 모여서 마치 하느님이 내려오길 기다리듯, 종을 향해 무언가를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었다. 카운트 다운이 40쯤 되었을 때, 나는 퍼뜩 상자에 들어 있던 인형들을 꺼내어, 쫘르르 텔레비전 앞에 앉혀놓았다. 그런 다음, 영우와 함께 그 사이에 끼어 앉아 새해야 오너라 하고 기다렸다. 아빠와 엄마는 새해 10초를 남겨두고부터 숫자를 세기 시작하셨다. 갑자기 보신각종 앞에 서 있던 어른들이 커다랗고 길쭉한 말뚝을 뒤로 밀었다가 앞으로 더 힘껏 밀어 종을..
2008.01.01 -
놀라운 선물
2007.12.26 수요일 크리스마스 날 새벽, 침대 머리맡에 놓여있는 선물을 보고 나는 난처했다. 엄마가 너는 이제 나이가 많아서 선물 받을 가능성이 작다고 말씀하셨었기 때문이다. 나는 섭섭했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또 선물 받을 만한 착한 일을 많이 한 것도 아니라서 자격이 없다고도 생각되었다. 하지만, 내가 정말 그렇게 많이 컸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고, 이젠 산타 할아버지와 선물의 세계에 더 끼어들 수 없는 처지가 된 것 같아 서글퍼져 한숨만 나왔다. 그래도 혹시나 몰라서, 잠든 영우의 머리맡에 걸어놓은 크리스마스 양말을 몰래 떼어 내 머리맡에 옮겨두고 새벽까지 이불 속에서 뒤척거리다가 잠이 들었다. 그런데 잠시 뒤에 눈을 뜨자마자 베개 옆에 불룩하게 포장된 선물 꾸러미가 놓인 것을 보고,..
2007.12.26 -
2007.08.10 불 나다
2007.08.10 금요일 늦은 밤 11시, 엄마가 갑자기 현관 문 밖으로 나갔다 들어오시더니 마루에 모여있는 우리 가족에게 소리쳤다. "여보, 큰 일 났어요! 우리 아파트에 불 났대! 상우야, 영우야, 어서 나가자!" 그 다음부터는 급하게 일이 돌아갔다.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서 우리는 계단으로 걸어 내려 대피하였다. 우리 집은 5층인데 3층 쯤 내려가 보니 퀘퀘하고 시커먼 연기가 사방에 꽉 차 있었다. 그 때부터 나는 학교 안전 교육 시간에 배운 방법대로 머리를 숙일 수 있는대로 바짝 숙이고 두 손으로 코와 입을 막고 내려왔다. 뒤따라 오던 영우는 "엄마, 앞이 안 보여!" 하면서 울부짖었다. 간신히 바깥으로 나와 보니, 사람들이 아파트 앞에 구름처럼 모여있었고 소방차와 구급차가 도착해 있었다. 사람..
2007.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