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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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는 산과 일어나는 도시
2011.12.08.목요일 오늘은 1학년의 마지막 기말고사가 끝나는 날이다. 솔직히 이번 기말고사는 중학교 첫 1년을 그냥 날려버린 것 같은 기분에 착잡하고 숨이 막혀온다. 나는 한숨에 밀려 풀잎이와 함께 나도 모르게 숨이 탁 트이는 산을 오르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 학교생활을 어떻게 했던가? 나의 학교생활에 대한 환상은 깨어졌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진실을 학교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학교 공부가 때로는 진실을 외면하는 수단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삶에 대한 고민 없이 아무 생각 없이 구는 아이들에게 질렸다. 공부를 못해서 학교 이름에 먹칠을 하는 학생은 필요 없다고 당당하게 훈화하시는 교장 선생님과 삶이나 사회 문제에 관심을 두면 학생은 공부해야지 그런 거 알아서 뭐하냐는 냉랭한 분위기의 ..
2011.12.12 -
호수공원에서 만난 가을
2010.10.10 일요일 오늘은 일산에 있는 호수공원에 갔다. 나와 영우가 시험 준비 기간인데도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거리고 투닥투닥 다투니까, 엄마가 그 꼴을 못 보시겠다며 어디론가 가자고 하셨다. 엄마는 가을의 정취도 느끼고 야외에서 공부도 하자고 하셨다. 우리는 배가 고파 호수에 가까운 풀밭에서 돗자리를 펴고 앉아, 엄마가 싸온 맛있는 도시락을 먹기 시작했다. 주먹밥, 김밥, 할머니가 시골 산소에 갔다가 따오신 토실토실 익은 밤, 할아버지께서 사오신 호두과자, 사과, 참외, 엄마는 이렇게 많은 것을 싸서 오셨다. 우리는 먹이에 굶주렸던 다람쥐처럼 배가 터지도록 먹고, 주섬주섬 각자 배낭에서 공부할 것을 꺼내었다. 하지만, 공부를 얼마 시작한 지도 안 됐는데, 어느새 나는 자동으로 움직이는 바지를 입..
2010.10.14 -
여름 밤 산책
2010.07.16 금요일 밤 9시, 엄마, 아빠는 갑자기 나갈 준비를 하시며 "엄마, 아빠 산책간다!" 말씀하셨다. 나와 영우도 얼떨결에 축구공을 가지고 따라나섰는데, 아빠는 신경이 쓰여서 산책을 못하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축구공을 놀이터 옆 풀숲에 묻어두고 본격적으로 밤 산책을 시작하였다. 낮에는 느낄 수 없었던 풀의 향기가 밤의 어둠과 고요에 떠밀려왔다. 밤 공기는 살짝 으스스 추웠다. 나는 소매가 없는 옷을 입어서 더 춥게 느껴졌다. 나는 달렸다. 빠르지는 않지만, 천천히 '흠하~ 흐음 하아~' 숨을 쉬면서 규칙적으로 팔을 저으며 달리니, 속도는 느려도 오랫동안 지치지 않고 달릴 수 있었다. 한참 달리고 잠시 멈춰 서서 뒤를 돌아다보았다. 이미 아파트 단지는 멀어져 있었고, 가족들은 한참 뒤에 따..
2010.07.17 -
<꼴찌도 행복한 교실>을 읽었습니다!
2010.04.24 토요일 나는 얼마 전 태터앤미디어 간담회에 참석했다가, '꼴찌도 행복한 교실'이라는 책을 선물 받았다. 이책은 독일에 사시는 두 아이의 엄마가 '무터킨더'라는 이름의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블로그의 내용을 하나로 묶은 책인데, 독일의 교육 방식을 자세히 알 수 있는 제목부터가 내 마음을 확 끌었다. 하필 요즘이 중간고사 기간이라, 책을 좀 쫓기면서 시간 나는대로 짬짬이 보았다. 그러나 시험이 끝나면 다시 오랫동안 마구 천천히 읽어봐야겠다. 이 책은 책장을 넘기면 숨은 보물이 우르르 쏟아져나오는 것처럼, 흥미롭고 갈수록 더 읽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꼴찌도 행복한 교실'이라니 눈이 번쩍 뛰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나라에서 '꼴찌'라 하면, 수업은 잘 따라가지 못하고 평균 점수를 한참 이탈..
2010.04.25 -
황사 탈출하기
2010.03.20 토요일 나는 오늘 학교에서, 집에 어떻게 가나 내내 걱정이 되었다. 황사 때문에 교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온통 끔찍하게 노란색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학교 끝날 시간이 되어서는, 하늘과 나무도 생명을 잃고 이 세상의 모든 게 다 기울어가는 것처럼, 노란색에서 더 진하고 기분 나쁜 뿌연 똥 색으로 뒤바꿔져 있었다. 학교가 끝날 때에는 집에 오는 게 겁이나, 학교에 조금 더 남고 싶었지만, 석희와 함께 마스크 안에 물 적신 휴지로 입을 가리고 현관을 나왔다. 학교 밖의 분위기는 자연재해가 일어나거나 전쟁이 일어난 모습 같았다. 하늘은 온통 황토색에, 황사 그치는데 별로 도움을 주지도 않는 빗방울이 가끔 툭, 툭~ 떨어졌다. 아이들은 꼭 도망치는 행렬처럼 이어져서 가고 있었다. 석희는 ..
2010.03.21 -
봄에 내리는 눈
2010.03.10 수요일 "후아~!" 도저히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파트 현관 밖의 풍경은 말 그대로 하얀 나라였다. 지금까지 나는 '이제 겨울은 끝났어! 지긋지긋한 눈이여! 이제 다음 겨울까지는 안녕!'하고 생각하며 완전히 봄을 맞은 기분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눈이 하룻밤 사이에 아무 데나 밟기만 해도, 허벅지까지 푹푹 빠질 정도로 내리니,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학교 갈 길을 찾아야 했다. 다행히도 제대로 된 길이 있기는 하였다. 앞서 간 사람들이 만들어 논 발자국 길, 계곡 사이 흐르는 작은 계곡 같은 길은, 그나마 눈을 밟지 않고 안전하게 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사방이 엄청난 눈이 쌓인 상태에서, 그 사이 작은 길로 그것도 미끄러운 길로 다니는 것은, 공중 줄타기처..
2010.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