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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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보다 커버린 나
2010.06.08 화요일 학교 갔다 와서 샤워한 뒤, 옷을 입고 드라이를 하는 중이었다. 갑자기 엄마가 키를 재보자고 내 옆에 서보셨다. 화장대 거울에, 나와 내 옆에선 엄마의 모습이 나란히 비추어졌다. 나는 조금 충격을 받았다. 지금까지는 나와 엄마의 키가 비슷비슷했었다. 때로는 엄마가 키높이 신발을 신으셔서 잘 느끼지 못했는데, 거울로 보니 어느새 내 키가 엄마보다 훌쩍 더 커 있었다. 5학년 때만 해도 엄마보다 작았던 나는, 이런 날이 올 줄 상상하지 못하였다. 아니, 상상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네 살인가, 다섯 살인가? 할인마트에서 엄마를 잃어버려, 미아보호소에서 방송을 하고 기다리고 있을 때, 엄마가 달려오셨다. 그때 고개 숙여 나를 안아주던 엄마는 정말로 커 보였다. 그래서 언제나 엄마..
2010.06.09 -
5등을 한 줄다리기
2010.04.08 목요일 오늘 우리 반은 일찍부터, 6교시 합동 체육 시간에 줄다리기를 한다는 소문에 웅성거렸다. 나는 줄넘기나 힘을 많이 빼는 운동이 아닌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줄다리기가 은근히 기다려졌다. 드디어 6교시 합체 시간, 운동장에는 기다란 밧줄이 놓여 있었다. 아주 길고 내 팔뚝만 한 굵기에, 크고 튼튼한 새끼줄로 만든 밧줄이었다. 일단은 몸 풀기 운동을 하고, 선생님께서 짜신 대진표대로, 6학년 1반과 6반이 먼저 경기를 하였다. 난 청군과 백군으로 나눠서 할 줄 알았는데... "자, 준비!" 5반 선생님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리자, 모든 아이는 숨을 죽였다. "뎅~에엥~" 징소리가 웅장하게 울리고, 1반과 6반이 일제히 일어서서 줄을 잡고 잡아당겼다. 동시에 응원하는 아이들도 ..
2010.04.10 -
나무 타기
2009.02.12 목요일 영우와 피아노 학원 차를 기다리는 동안, 놀이터 나무에 올라가 보았다. 그것은 굵은 나무를 원기둥 모양으로 가공해서 놀이터 안에 말뚝처럼 박아놓고, 몸통 여기저기에 도끼로 찍은 듯한 흠을 만들어, 그것을 잡거나 밟고 올라갈 수 있게 만든 거대한 놀잇감이었다. 나무의 감촉은 매끄러운 돌 같았다. 나는 먼저 왼발을 제일 낮은 틈에 딛고, 조금 더 높은 틈에 오른발을 디뎠다. 일단 그렇게 몇 번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해보았다. 그러자 요령이 붙었다. 나무 둥치를 안고 허리와, 등, 어깨 순서로, 뱀처럼 양쪽으로 번갈아 흔들며 올라가니, 발을 딛기가 더 쉬웠다. 정말로 새 알을 훔쳐 먹으려고 나무 위를 올라가는 뱀이 된 기분으로, 나는 신이 나서 어깨춤을 추듯이 더 심하게 몸을 흔들며 ..
2009.02.13 -
2007.03.19 가슴 아픈 사실
2007.03.19 월요일 학교에서 영어 특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내가 학기 초에 공원 안 풀숲가에서 이름 모를 어린 나무를 발견했었는데 그 당시 그 나무는 키가 나와 맞먹었고, 잎사귀는 연두색이었고 껍질은 보들보들해서 아기 나무라 여겼다. 그런데 그 어린 나무 주위에 있는 나무들이 밑동만 남기고 싹둑 베어져 있었고, 베어진 나무 몸뚱이들이 시체처럼 풀숲에 널려 있었다. 그것을 보고 여기 이 아기 나무만큼은 내가 지켜 주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그 후로 매일 학교 오고 가는 길에 어린 나무를 만져주고 이야기도 걸고 이름도 무엇으로 지어줄까 고민도 하였다. 그러나 나는 오늘 알게 되었다. 그 나무는 이제 막 자라는 나무가 아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나무 윗 부분에 있는 굵은 가지들에 여..
2007.03.19 -
2006.05.09 신체검사
2006.05.09 화요일 오들 신체 검사 시간에 나는 마음이 떨렸다. 그 이유는 혹시 내 몸무게가 너무 많이 나가지는 않으려나 하는 생각 때문이다. 친구들이 내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걸 알면 뚱뚱보라고 놀릴 거다. 우리 할아버지도 나를 뚱뚱하다고 걱정하신다. 아이들은 키득키득 웃기도 하고 쇼파에 매달려 장난도 치면서 키와 몸무게를 재었다. 아이들이 기둥에 몸을 딱 붙이고 재는 모습이 이집트 벽화 같았다. 내 차례가 되어 신발을 벗고 발판 위에 올라가 몸을 피고 서 있으니까 갑자기 머리 위로 초록색 막대기가 `즈으으으으 탁!`하고 떨어졌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134, 42" 라고 불러 주셨다. 나는 키는 더 커지면 좋겠고 살은 빼고 싶다.
2006.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