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지(3)
-
봄의 향기
2008.03.01 토요일 오늘따라 집안 공기가 텁텁하여 숨이 막혀 견딜 수가 없었다. 창문 밖에서 쨍쨍 빛나는 해가 나를 부르는 거 같았다. 방과 마루에서 먼지를 피우며 펄쩍펄쩍 뛰어놀다가, 기침을 심하게 해서 엄마에게 꽥 잔소리를 들었다. 책상 앞에 앉아서 컴퓨터를 켰다가 책을 폈다가 했는데 집중이 되지 않았다. 나는 더 참지 못하고 "내 심장이 타오르고 내 영혼이 요동치네요! 내 온몸이 굶주린 짐승처럼 근질거립니다! 그러니 나 놀러 나갈게요!"라고 쪽지에 써놓고 집을 나와버렸다. 나는 순식간에 공원까지 다다랐다. 공원에서 빌라단지로 접어드는 계단을 팡팡 뛰어내려, 우석이 집앞에서 벨을 힘차게 누르고 "우석아!" 소리쳤다. 우석이 집에 아무도 없음을 알고 다시 돌아 나와 그때부터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2008.03.02 -
2007.10.12 반지의 제왕
2007.10.12 금요일 중간 고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직도 나는 기침을 쿨럭쿨럭거리며 휘어진 갈대처럼 고개를 숙이고 힘 없이 걸어왔다. 그 동안 떨어질 줄 모르는 감기와 시험 공부에 한없이 지친 나는 이제 노인이 된 기분으로 우리 집 벨을 눌렀다. 엄마가 "네 책상에 무엇이 있나 보렴!" 하셨을 때도 나는 시험이 끝났다고 책을 사 준 것은 아닐까 생각하였다. 그러나 책상 위에 놓인 것은 쪽지 한 장과 작은 검정색 복 주머니처럼 생긴 것이었다. '상우님, 블로그 대마왕이 되신 것을 축하 드립니다! 대마왕이 되신 기념으로 반지를 드리겠습니다!' 라는 글을 읽기가 무섭게 나는 반지를 꺼내 보았다. 왕관 모양의 은빛 반지였는데 내가 원했던 금색은 아니었지만, 손가락에 끼고 높이 처들었더니 반지가..
2007.10.12 -
2007.04.04 이상한 개교 기념일
2007.04.04 수요일 오늘은 왠지 이상한 날이다. 어젯밤 나는 심한 감기 기운으로 갑자기 토하느라 잠을 설쳤다. 약을 먹고 간신히 잠 들었는데, 눈을 떠 보니 온 집 안이 대낮처럼 환하고 빈 집처럼 조용했다. 시계를 보니 오전 10시! 나는 깜짝 놀라 이런 지각이군 하면서 가방을 찾았다. 그런데 엄마가 현관 옆 방에서 웃으시며 "잘 잤니? 오늘 개교 기념일이니까 푹 쉬렴." 하셨다. 그제서야 나는 다시 침대로 돌아와 오랜만에 게으름을 피웠다. 집 안은 나 밖에 없는 것 처럼 조용했고,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은 부드럽고 따스했다. 게다가 그 시끄러운 영우까지 미술 학원 가고 없으니 그야말로 내 세상이었다. 하지만 뭔가 낯설었다. 내가 지금 이 시간에 이러고 있다는 것이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 처럼 ..
2007.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