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게(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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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왕푸징 거리
2014.08.09 토요일 '중국'하면 떠오르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네 발 달린 것은 의자 빼고는 다 먹는다!'라는, 어릴 적 들어왔던 중국인의 폭넓은 식습관이다. 북경 여행을 온 내내, 나는 밥 먹으러 간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머릿속으로 온갖 상상을 했다. '메뚜기 볶음? 말벌 조림? 풍뎅이 튀김? 생바퀴벌레?' 같은 끔찍한 상상을 하며 밥을 기다렸다. 다행스럽게 모두 평범한 식당에 걸맞은, 평범함이라는 범주 안에 넣을 수 있는 소박한 밥과 기름진 반찬들이었다. 그런데 지금 내 앞에 펼쳐져 있는 이 왕푸징 시장 골목에서는 '평범함'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아주 특이한 음식들이 많았다. 입구에서부터 짭조름하고 찌릿찌릿한 향신료 냄새가 진동하며, 꼭 콩나물 지하철에서 시장판이 열..
2014.08.13 -
이 때우기
2008.07.24 목요일 치과에 영우 앞니를 뽑으러 따라갔다가, 나도 간 김에 같이 검사를 받아보다. 그런데 뜻밖에 영구치인 어금니가 조금 썩어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당장 치료를 받기로 했다. 나는 병원 침대 위에 반듯이 누웠다. 의사 선생님께서 "마취하지 말고 그냥 하자!" 하며 이 때울 준비를 하고 계셨다. 나는 누운 채로 선생님을 흘깃 올려다보며 "아픈가요?" 하고 물었다. "아니, 아프지는 않지만 불편할 거야." 선생님은 입을 크게 '아' 벌리라 하고는, 말랑말랑한 초록색 천을 이 때울 자리만 남겨놓고 입안 전체에 착 덮어씌웠다. 그리고는 몇 번을 "더 크게 아~!" 한 다음, 내 입이 다물어지지 않게 집게 같은 것으로 위아래 입술을 찝어서 고정했다. 그랬더니 나는 붙잡힌 상어처럼 입을 아 벌..
2008.07.28 -
급식 당번
2008.03.18 화요일 우리 반 아이들은 급식 시간이 되자,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급식 먼저 받기 전쟁(?)에 돌입했다. 먼저 손을 씻고 와서 자리에 앉아, 예쁘게 손 머리를 하는 모둠이 빨리 급식을 받기 때문이다. 한 명이라도 늦게 돌아오는 모둠은 전체가 나중에 받기 때문에, 아이들의 손 씻기 경쟁은 치열하다. 화장실 수돗가는 손 씻으러 온 다른 반 아이들까지 합쳐져 미어터지고, 어떤 아이는 손 씻으러 가는 척 나갔다가 그냥 들어오기도 한다. 나는 오늘도 나만의 유일한 손 씻는 곳인, 대걸레 빠는 수돗가에서 남들보다 여유롭게 손을 씻고 돌아와, 우리 4모둠과 함께 급식 당번 일을 시작했다. 준영이와 같이 교실 문 앞에 도착한 급식차를 스르르 교탁 옆으로 밀어 옮겼다. 곰돌이 무늬가 촘촘 박힌 급식 ..
2008.03.18 -
한겨울 밤에 물냉면
2007.12.27 목요일 저녁 8시, 방학을 맞이하여 아빠가 마침 배도 출출한데, 특별히 냉면을 사주겠다고 하셨다. 우리는 잠바를 입고 신났다고, 집 앞으로 나갔다. 엄마는 추운데 무슨 냉면이냐고 툴툴거리셨다. 영우도 냉면은 싫고 햄버거는 안 되겠느냐고 졸랐다. 아빠는 힘을 주어 "보통 냉면이 아니야. 특별 세일하는 오장동 함흥냉면이라구!" 하셨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으리으리한 고깃집 앞이었다. 영우는 "와! 갈비집이다!" 하며 좋아라고 펄쩍 뛰었다. 엄마는 "어디가 세일이야?" 하며 기웃기웃하셨다. 그때 아빠가 "봐! 저기, 냉면 세일!" 하며 입구에 붙어 있는 행사 세일 메뉴를 손가락으로 찾아내셨다. 고깃집 문을 열자마자 지글지글 고기 굽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사람들도 바글바글 불판 앞에 둘러앉..
2007.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