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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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발표회의 꽃은 줄넘기야!
2010.09.30 목요일 "야, 어떻게! 우리 차례야! 빨리빨리~!" 내 앞에 은철이는 비장하게 이 말을 남기며, 대기실에서 강당 무대로 쏜살같이 뛰쳐나갔다. 무대에서는 두 아이가 마주 보고 커다랗게 줄을 돌렸다. 나는 1초 정도 어리버리해져서 가만히 있다가 얼른 무대로 뛰어나갔다. 관객들은 볼 새가 없었다. 벌써 2번째 주자인 경래가 넘고 있었다. 나는 4번째다. 긴장감이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퍼져서, 등골에서 얼음물이 흐르는 듯한 차가움이 쫙 퍼졌다. 나는 고개를 살짝 돌려, 관객석 오른쪽 앞줄에 있던 엄마를 보았다. 그리고는 바로 고개를 돌려서 막 은철이가 돌고 나온, 거대한 도넛 모양의 줄 안으로 뛰어들고, 두 발을 왼발부터 차례로 들어 올려 줄을 넘고 줄 밖으로 뛰쳐나갔다. '첫 번째를 무사히 ..
2010.10.02 -
의인법에 무너지다
2009.06.17 수요일 오늘 낮 우리 학교 강당에서, 방송국에서 나와 '퀴즈 짱'이라는 프로를 녹화하였다. 학교별로 퀴즈 대회를 열어서 우승자를 뽑고, 우승자들끼리 모여 왕중왕을 가리는 TV프로라고 한다. 난 방송국에서 나누어 준 모자를 쓰고 맨 앞줄에 앉았다. 행운의 7번을 달고! 4, 5, 6학년 100명이 모여 시작했는데, 어느덧 자리는 깎아버린 잔디처럼 듬성듬성 비어가고, 16명 정도가 남았다. 나는 내가 여기 끼어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스스로 아무런 대비 없이 이 자리까지 왔다는 것이 대견스럽기도 했다. 그렇지만, 진행 중간마다 아나운서 아저씨가 "와~ 이름이 정말 멋있네요!" 하며, 내 이름이 어떤 유명 배우랑 같은 것을 강조했고, 아이들이 그게 무슨 대단한 일인 것처럼 우와~ 탄성..
2009.06.19 -
2007.09.14 첩보원들의 학예회
2007.09.14 금요일 우리 반은 학예회 총연습을 하기 위해, 4층 다목적 강당으로 향했다. 아직은 우리 반의 연습 차례가 아니라서 강당 밖 복도에서 줄을 서 기다렸다. 아이들은 서로 마주보고 수다를 떨고 몸을 비틀고 털썩 주저앉았다. 또 우뚝 서 있기만 하는 아이도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이리 저리 돌아다니시기도 하고 다른 선생님과 이야기하시기도 하고 우리에게 무대에서 지켜야 할 몇 가지 사항을 말씀해 주시기도 하였다. 나는 다른 아이들과 이야기하기도 하고 몸을 비틀며 우리가 꼭 첩보 요원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 옷이 똑같다는 것 때문이었다. 비록 무대 의상이라 똑같이 맞춘 거지만 나는 왠지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지금은 첩보 요원들이 비밀리에 모여서 정보 정리 회의를 하는 것 같았..
2007.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