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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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어 문드러진 4대강!
2013.10.25 금요일 강이 녹색이었다. 초록색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거무죽죽하고 눅눅한 초록색이 기분 나빴다. 굽이굽이 질척하게 흐르는 게 강물인지, 푹 데쳐서 흐느적거리는 시금치인지 모르겠다. 토할 것 같다. 초록색의 걸쭉한 물로 바뀐 강물 때문에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는 집에 있는 정수기 물을 더 마실 수가 없고, 물고기는 떼죽음 당했고, 어부의 얼굴도 까맣게 죽었다. 낚시하는 사람들은 물이 흐르지 않아 강이 죽었다고 수심에 찬 표정으로 말했고, 농민들은 강물이 높아져 땅에서부터 물이 차 올라, 진흙탕 밭이 되어버린 밭을 보며 울고 있다. "유럽에서는 우주의 시작을 알아보는 실험을 계획하고 성공시켜서 노벨상을 받는데 7조 원을 썼고, 우리나라에서는 동영상으로 보시는 것처럼 강을 파괴하..
2013.10.26 -
치즈는 어디로?
2009.01.08 목요일 오후 3시쯤, 오랜만에 반 친구 석희 집에 놀러 갔다. 석희랑 재밌게 역사책도 보고, 과학 이야기도 주절주절 나누며 놀다가, 갑자기 석희가 "배고프다!" 하였다. 나도 슬슬 배가 고파져서 따라서 '배고프다!" 했더니, 석희가 귀가 솔깃한 제안을 하였다. "우리 라면 끓여 먹자~!" 나는 자신 있게 팔을 걷어붙이고 라면 끓일 준비에 들어갔다. 엄마가 끓일 때처럼, 부엌 붙박이장을 열고 라면 끓일 냄비를 하나 찾아내어, 구석에 있는 정수기에서 물을 따라 받았다. 가스레인지 위에 냄비를 올려놓고, 불을 켜려고 하는데, 순간 불이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난 "석희야, 미안한데 이 불 니가 켜주면 안 될까? 너무 무섭단 말이야!" 했다. 그랬더니 석희도 "싫어! 나도 무섭단 말이..
2009.01.10 -
물을 찾아서
2008.09.08 월요일 3교시, 우리 반은 운동회 때 단체로 할 우산 무용을 연습하려고, 준비해 온 우산을 들고 운동장으로 나갔다. 그리고 다른 반들과 모여 넓게 줄을 서서 우산 무용 연습을 시작했다. 그런데 따갑던 햇볕이 점점 커지더니,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운동장에 엄청난 태양빛이 쏟아져 내렸다. 연습하던 아이들은 화살을 맞은 듯, 갈수록 찡그린 표정을 지었고, 내 목은 사막에 발을 담그듯, 천 갈래 만 갈래로 타들어갔다. 무릎을 숙일 때마다 허벅지에 있는 열기가 느껴졌고, 심지어 우리들의 살이 익는 냄새까지 나는 것 같았다. 지도 선생님께서 눈치를 채셨는지, 다른 때보다 일찍 연습을 마쳐주셨고, 아이들은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정수기가 있는 급식실로 뛰어갔다. 급식실 가는 길은 물을 마..
2008.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