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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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막은 공
2010.06.21 월요일 요즘 나는 기말고사 기간인데도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놀이터 축구장으로 향한다. 오늘도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민석이, 재호와 축구를 하려고 뛰어나갔다. 영우도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형아, 나도 끼워줘!" 하면서 잽싸게 따라나섰다. 이번에 내가 맡은 역할은 골키퍼이다. 내가 운동을 아주 못한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4학년 처음에도 내 덩치만 보고 아이들이 골키퍼를 시켰는데, 되려 공을 피해서 욕을 먹은 적이 있었다. 골키퍼를 할 때마다 '이번에는 꼭~!' 언제나 굳은 각오를 하지만 번번히 실패만 했다. 이번에는 재호와 한팀이 되어서 나는 골키퍼, 재호는 미드필더다. 나는 옛날에 아빠가 쓰시던 장갑을 가져와 끼고, 나름대로 열심히 했건만 이번에도 번번히 공을 놓쳤다. 4..
2010.06.22 -
할머니와 동물원에 간 날 - 1탄
2010.05.02 일요일 과천 동물원 입구에서 표를 내고 들어서니 "아, 이제 동물원에 확실히 왔구나!" 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우리 가족은 아침 내내 엄마가 싸주신 도시락을, 한 배낭씩 둘러메고 지하철을 타고 대공원 역에서 할머니와 만나, 동물원으로 향했다. 그 길이 너무 멀어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코끼리 열차를 타고 매표소 입구까지 가는 길은, 상쾌한 오월의 바람에 가슴이 빵~ 부풀어 터질 것 같았다. 모든 것이 눈부셨다. 오랜만에 갠 날씨는 100년 만에 경험한 것처럼 푸르고 새로웠다. 동물원에 들어서자 간판 문이 눈에 띄었고, 물소와 기린을 볼 수 있는 전망대와 분홍빛과 하얀빛이 우아한 홍학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홍학 옆에는 기린이, 긴 목과 다리를 쭉 뻗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특..
2010.05.05 -
눈 속에 푹 빠진 날
2010.01.04 화요일 저녁 8시, 나는 영우와 함께 심부름을 하려고, 아파트 단지에 산처럼 쌓인 눈길을 헤치고 상가로 내려갔다. 매일 보던 길이지만, 폭설에 잠겨서 처음 보는 곳처럼 낯설었다. 우리는 새하얀 눈의 행성에 처음 도착한 우주인처럼, 엉거주춤한 자세로 저부적, 저부적~ 소금같이 수북하게 쌓인 눈 속을 걸어나갔다. 눈길은 가로등과 달빛에 비교도 안되게 하얀 운석처럼 빛났다. 눈이 적당히 쌓이면 환상적일 텐데, 도로를 포장한 듯 덮어버리니 어디를 밟아야 할지 분간이 안돼서 걸음이 위태위태했다. 그런데 마침 내가 맘 놓고 걸어보고 싶은 길이 눈에 띄었다. 그곳은 원래 차도와 인도 사이에 화단을 심어놓은 넓은 공간이었는데, 지금은 겨울이라 비어 있고, 눈이 아이스크림처럼 푸짐하게 쌓여 있었다. ..
2010.01.06 -
2006.01.22 킹콩
2006.01.22 일요일 나는 킹콩을 본 거 중에서 두 가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첫번째는 킹콩과 티라노사우루스의 대결이다. 킹콩이 이겼지만 그건 예상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킹콩은 마음대로 손으로 때려 눕힐 수 있고 점프를 해서 발차기로 얍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티라노사우루스는 물기만 할뿐이지 하는 게 없다. 놀라운 것은 티라노사우루스와 킹콩이 마치 해와 달이 싸우는 것처럼 엄청나게 싸웠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킹콩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맨 위에서 마지막으로 노을을 보고 가슴을 치면서 아름답다는 표현을 한 것이다. 나는 그 장면을 볼 때 킹콩이 아주 따뜻한 마음을 가진 것 같아서 마음이 찡했다. 킹콩이 미사일에 맞아 떨어져 죽을때 나도 죽는 것 같았다.
2006.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