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드(7)
-
달리기의 여왕
2009.06.24 수요일 1교시 체육 시간, 우리 반은 여느 때처럼 운동장에서 단계별로 기초 운동을 시작했다. 우리는 요즘 한창 기말고사 준비를 하느라 피곤한 탓인지, 모두 찌뿌드드한 표정으로 기초운동을 해나갔다. 게다가 날씨는 어떤가? 습기 한 점, 구름 한 점 없고, 따가운 햇볕에 닿는 부분은 살이 타들어가 까맣게 재가 되는 것 같았다. 특히 철봉을 만질 땐 불로 달군 쇠를 잡는 것 같이 코끝이 일그러졌다. 그러자 체육 선생님께서는 시들시들 시금치처럼 늘어진 우리를 모이게 해서, 남자, 여자 나란히 줄을 세워 운동장 중간으로 데려가셨다. 그리고는 앞줄에 선 아이들이 "이어달리기를 해요~" 하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 나는 곧 다리에 힘이 풀려버렸다. "제발 안돼! 얘들아, 이어달리기만은~ 너희들 나 ..
2009.06.25 -
놀라운 선물
2007.12.26 수요일 크리스마스 날 새벽, 침대 머리맡에 놓여있는 선물을 보고 나는 난처했다. 엄마가 너는 이제 나이가 많아서 선물 받을 가능성이 작다고 말씀하셨었기 때문이다. 나는 섭섭했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또 선물 받을 만한 착한 일을 많이 한 것도 아니라서 자격이 없다고도 생각되었다. 하지만, 내가 정말 그렇게 많이 컸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고, 이젠 산타 할아버지와 선물의 세계에 더 끼어들 수 없는 처지가 된 것 같아 서글퍼져 한숨만 나왔다. 그래도 혹시나 몰라서, 잠든 영우의 머리맡에 걸어놓은 크리스마스 양말을 몰래 떼어 내 머리맡에 옮겨두고 새벽까지 이불 속에서 뒤척거리다가 잠이 들었다. 그런데 잠시 뒤에 눈을 뜨자마자 베개 옆에 불룩하게 포장된 선물 꾸러미가 놓인 것을 보고,..
2007.12.26 -
2007.03.16 체육 시간
2007.03.16 금요일 우리 반은 체육 시간에 지그재그 달리기를 하였다. 남자 여자 두 줄 씩 두 팀으로 나누어서 남자가 먼저 달렸는데 정글짐 모래밭 앞에 반쯤 박혀있는 타이어 여러 개를 뺑그르르 돌아서 다시 자기 팀으로 돌아와 다음 선수에게 터치하는 것이다. 내 차례가 다가오자 겁이 나고 긴장이 되어 온 몸을 푸르르 떨었다. 왜냐하면 순간 1, 2학년 때 달리기를 꼴지해서 부끄러웠던 기억이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나는 정면으로 앞을 보고 엉덩이를 뒤로 빼고 손을 내밀어 우리 선수가 터치해 주길 기다리며 침을 꿀꺽 삼켰다. 드디어 뛰기 시작했는데 두 손을 주먹 쥐고 마음 속으로 '이야아아아!' 소리 지르며 달렸다. 두려운 기분과 바람처럼 시원한 기분이 섞여 묘했다. 출발점으로 돌아왔을 때 저만치서 다른..
2007.03.16 -
2007.01.03 싸늘한 운동장
2007.01.03 수요일 영어 수업을 마치고 도시락을 먹으려는데 방학이라서 교실 문들이 모두 잠겨 있었다. 그래서 운동장까지 밀리듯 가 보았다. 나는 운동장 스탠드에 자리를 잡고 앉아 도시락을 먹기 시작했다. 날씨가 얼마나 추웠는지 이가 오들오들 떨리고 주먹밥이 얼음 덩어리처럼 차갑고 딱딱했다. 입을 벌릴 때마다 추위가 솔솔 들어와서 먹고 난 다음에 언 입을 손으로 닫아 주어야 했다. 운동장에서 뛰노는 아이들 때문에 모래 바람까지 날려서 잠바로 도시락을 감싸고 먹어야 했다. 집 나온 거지가 이런 것일까? 눈물이 찔끔 났다. 그러나 내가 북극에 앉아 언 물고기를 먹고 있는 펭귄 같다는 기분이 들어 웃음도 났다. 엉덩이까지 얼어 집에 가고 싶었지만 그래도 언 몸을 이끌고 뚱기적 뚱기적 피아노 학원으로 갔다..
2007.01.03 -
2006.06.22 축구 수업
2006.06.22 목요일 오늘은 새로운 특기 적성 수업이 있는 날이다. 우리는 운동장 스탠드 왼쪽으로 모였다. 감독님께서 출석을 부르셨다. 먼저 아웃 사이드와 드로잉을 배우고 손으로 공을 떨어뜨려서 발등으로 다시 차 올리는 연습을 하였다. 그런데 나는 공이 차이질 않고 발등을 맞고 공이 자꾸 튕겨 나갔다. 그리고 우리는 실전 연습경기에 들어갔다. 나는 노란팀이 되어 빨강팀과 싸웠다. 나는 공을 쫓아 다니기만 하고 한번도 차 보지를 못했다. 게다가 공에 볼을 얻어 맞기까지 했다.
2006.06.22 -
2006.04.29 힘찬 응원
2006.04.29 토요일 우리 반 아이들이 운동장 스탠드에 모두 모였다. 청군과 백군의 대표들이 각각 2명씩 나가 달리기 시합을 하기 위해서였다. 우리 반 대표로 이현기와 민재준이 나갔다. 2-1 선생님이 호루라기를 불자 고학년 형들이 먼저 땅! 거세게 출발하였다. 선수들은 제각기 파란색 막대와 하얀색 막대를 들고 달렸다. 청군이 계속 이기다가 다섯 바퀴 쯤 돌 때 백군이 역전을 하였다. 나는 내 응원이 선수들에게 힘이 되지 않을까 해서 목이 터져라 응원을 하였다. 그런데 청군 응원 소리가 백군 소리에 파묻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신능 초등학교 운동장이 응원 소리로 뒤집어 질 것 같았고, 해도 우리의 앞 길을 비추어 주려고 쨍쨍하였다.
2006.0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