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탁(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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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새옷
2014.02.02 일요일 갑오년 새해다. 동학혁명이 일어난 지 120년 만에 다시 맞는 갑오년! 갑오년 새해를 맞아 내가 제일 해 보고 싶은 것은 새옷을 사는 일이었다. 구정이 지나고 주머니에 불룩한 세뱃돈에 의지하여 태어나서 처음으로 친구와 새옷을 사려고 나섰다. 난 지금까지 내 손으로 옷을 사 본 적이 한차례도 없다. 어떻게 입어야 보기 좋은지, 중고생이 입는 기본적인 옷의 종류를 어디서 사는지 알지 못했다. 함께 옷을 사러 따라와준 친구가 없었다면 정말 막막했을 것이다. 그 친구는 옷을 아주 잘 입는다. 나처럼 돈이 궁하기는 마찬가지지만, 멋부리는데 관심이 많은 친구였고 나의 비루한 옷차림을 보는 걸 괴로워하는 친구라서, 함께 가 옷을 골라줄 수 있겠냐는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었다. 친구는 불광동 ..
2014.02.06 -
검은 손톱
2009.06.25 목요일 1교시 미술 시간, 아침에 학교 앞 문구사에서 산 붓펜을, 나는 요리조리 돌려가며 살펴보다가, 선생님께 여쭈었다. "선생님, 이 붓펜은 연필을 잡는 방법으로 사용해야 하나요? 붓을 쥐는 방법으로 사용해야 하나요?" 하니까, 아이들이 먼저 "이 바보야, 당연히 연필을 잡는 방법으로 쥐어야지!" 했다. 모두가 붓펜으로 화선지 위에 수묵담채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화선지 밑에는 선생님께서 나누어주신, 옛날 우리나라 화가들이 그린 붓 그림이 인쇄된 종이를 깔았다. 그리고 화선지에 비추는 그 그림을 붓펜으로 정성스럽게 따라 그리면 되었다. 나는 분명히 김홍도 아니면 신윤복 화백이 그렸을 법한, 광대놀이 그림을 따라 그렸다. 그것은 긴소매 옷을 입은 광대가, 왼쪽 팔은 머리 위로 쳐들고, ..
2009.06.27 -
2007.05.10 소음
2007.05.10 목요일 음악 시간이 되어서 우리 반은 음악실로 향했다. 우리들은 지정됐던 자리에 앉았고 음악 선생님은 '하하하 송'을 틀어 주셨고 그 때부터 음악 시간의 비극이 시작되었다. 원래부터 그랬지만 내 앞자리에 앉은 고기윤이 오늘은 더 심하게 고막이 터지도록 소리를 꽥꽥 질러대며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고기윤은 마치 정신 나간 사람처럼 입은 아주 동그랗게 벌리고 얼굴은 주름지게 인상을 쓰고 눈은 실처럼 가늘게 뜨고 손으로는 허공을 마구 휘저어대면서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폭탄이 터지듯 아주 이상한 소리로 불러서 그게 비명인지 노래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도 별로 신경쓰지 않는 아이들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잠시 음악이 끝나 숨을 돌렸지만 다시 노래를 부를 때 아까와 같이 ..
2007.05.10 -
2006.07.29 파업
2006.07.29 토요일 우리는 차 트렁크에 짐을 꾸역 꾸역 실어 놓고 안면도로 출발했다. 처음에는 우리도 들뜬 마음으로 출발했는데 어디서 부턴가 배가 고파오고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배는 밥 달라고 꼬르륵 조르는데 피서가는 차들이 밀려 꼼짝도 안하는 것이다. 창 밖 보니 차들이 긴 기차처럼 이어져서 사고가 나서 한 발자국도 못 가는 것 같았다. 우리는 휴게소까지만 참아 보기로 했으나 나는 못 참고 엉엉 울었다. 서해 대교를 거북이처럼 지나 행담도 휴게소에 도착 했을때 우리는 탄성을 질렀다. 하지만 웃음은 문 앞에서 뚝 그쳤다. 휴게소 곳곳에 빨간 파업 깃발이 꽃혀 있었다. 처음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식당가 문에 붙어있는 글을 보곤 실망에 차서 화장실로 갔다. 나는 생각했다. 휴게소 사장이 직원들..
2006.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