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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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꼭대기 위에 봉사활동
2013.06.27 목요일 한걸음 한걸음 걸을 때마다 다리에서 후루룩~ 힘이 빠져나가고, 온몸과 머리에서는 '힘들다, 힘들어!' 하는 말만 맴도는데, 내 발은 기계적으로 한걸음 한걸음 산 정상을 향해 내딛는다. 오늘 우리 학교가 봉사활동을 하러 인왕산 꼭대기를 향해 행군하는 중이다. 머리 위 뙤약볕은 내 몸을 녹여버릴 듯이 이글거리고 있다. 몸에서는 뜨거운 물에서 막 빼낸 빨래를 쫙~하고 짜는 것처럼 땀이 샘솟는다. 몸은 땀 범벅이 되어 미끄적흐느적거리면서 한걸음 내딛는 것도 힘겨울 정도로 체력이 고갈되고 있다. '이게 뭔 봉사활동이야?'하는 아이들의 불평 소리가 산을 메운다. 나는 처음엔 안간힘을 써서 선두에 나섰는데 체력이 좋지 않은 편이라, 어느새 같이 산을 오르던 아이들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어..
2013.06.28 -
은행에서 동전 바꾸기
2010.08.03 화요일 이삿짐을 싸느라 내 방 정리를 하다가, 낡은 돼지 저금통 하나를 발견했다. 미술 보관함에 묻어두었다가 잊어버리고 있었던 이 돼지 저금통은, 낡아서 금이 쩍쩍 가있는 부분을 테이프로 덕지덕지 붙여놓았다. 저금통 안에는 밑바닥을 묵직하게 채우는 돈이 있었다. 동전을 흔드니 쐐아쐐아~! 소리가 났다. 나와 영우는 저금통을 흔들어서, 동전 넣는 구멍으로 동전을 빼내었다. 동전은 잘 나오지도 않고 생각보다 양도 훨씬 많았다. 동전은 정말 양이 줄지 않는 것처럼, 계속 찔렁찔렁~ 침대 바닥에 쏟아졌다. 나와 영우는 돈이 쏟아지는 것을 보며 놀라서 눈알이 빠질 것처럼 동그래지고, 입이 동굴처럼 쩍 벌어졌다. 동전은 계속 쏟아지더니 결국에는 저금통 바닥을 들어내고, 내 침대 위에 기분 좋게 ..
2010.08.04 -
아슬아슬한 미용실
2010.02.12 금요일 영우와 나는 오랜만에 이발 하였다. 나는 상가 병원에 들렸다 가고, 엄마랑 영우는 블루클럽에 먼저 가 있었다. 나는 감기약을 지어서, 함박눈이 오는 상가 앞을 부리나케 뛰어서 블루클럽에 도착했다. 오, 그런데 사람이 정말로 많았다. 엄마와 영우가 한 15분 전에 미리 도착해 있었는데, 아직 머리 깎는 의자에도 앉지 못한 것이다. 나는 흠~ 한숨을 쉬며, 엄마와 영우 옆에 앉았다. 그러고 보니 내일부터 설연휴라서 머리를 단정하게 하고 가려는 줄이 많은 거구나!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고, 미용사 아줌마들이 두려워하는 영우 차례가 되었다. 영우는 매우 간지럼을 잘 타기 때문이다. 영우는 아래쪽을 향해서 무언가를 감춘 듯이 실실 웃다가, 급기야는 왼쪽 턱을 어깨에 붙인 상태에서 "께..
2010.02.15 -
의인법에 무너지다
2009.06.17 수요일 오늘 낮 우리 학교 강당에서, 방송국에서 나와 '퀴즈 짱'이라는 프로를 녹화하였다. 학교별로 퀴즈 대회를 열어서 우승자를 뽑고, 우승자들끼리 모여 왕중왕을 가리는 TV프로라고 한다. 난 방송국에서 나누어 준 모자를 쓰고 맨 앞줄에 앉았다. 행운의 7번을 달고! 4, 5, 6학년 100명이 모여 시작했는데, 어느덧 자리는 깎아버린 잔디처럼 듬성듬성 비어가고, 16명 정도가 남았다. 나는 내가 여기 끼어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스스로 아무런 대비 없이 이 자리까지 왔다는 것이 대견스럽기도 했다. 그렇지만, 진행 중간마다 아나운서 아저씨가 "와~ 이름이 정말 멋있네요!" 하며, 내 이름이 어떤 유명 배우랑 같은 것을 강조했고, 아이들이 그게 무슨 대단한 일인 것처럼 우와~ 탄성..
2009.06.19 -
한겨울 밤에 물냉면
2007.12.27 목요일 저녁 8시, 방학을 맞이하여 아빠가 마침 배도 출출한데, 특별히 냉면을 사주겠다고 하셨다. 우리는 잠바를 입고 신났다고, 집 앞으로 나갔다. 엄마는 추운데 무슨 냉면이냐고 툴툴거리셨다. 영우도 냉면은 싫고 햄버거는 안 되겠느냐고 졸랐다. 아빠는 힘을 주어 "보통 냉면이 아니야. 특별 세일하는 오장동 함흥냉면이라구!" 하셨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으리으리한 고깃집 앞이었다. 영우는 "와! 갈비집이다!" 하며 좋아라고 펄쩍 뛰었다. 엄마는 "어디가 세일이야?" 하며 기웃기웃하셨다. 그때 아빠가 "봐! 저기, 냉면 세일!" 하며 입구에 붙어 있는 행사 세일 메뉴를 손가락으로 찾아내셨다. 고깃집 문을 열자마자 지글지글 고기 굽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사람들도 바글바글 불판 앞에 둘러앉..
2007.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