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슬(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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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교과서 받는 날
2009.12.19 토요일 아침에 중이염과 축농증이 다시 겹쳤다. 머리가 어지럽고 목이 붓고, 기침이 쉬지 않고 커헉~ 커어~! 터지면서, 결국 제시간에 등교를 하지 못했다. 학교에 간신히 전화를 하고 죽은 듯이 잠들었다가, 늦은 3교시 시작할 때서야 나는 학교에 도착했다. 내가 쉬지 않고 학교에 간 이유는, 오늘 새 교과서를 받는 날이기 때문이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책도 좋지만, 매년 새 교과서를 받는 일은, 큰 상을 받는 것처럼 가슴을 뛰게 했다. 나는 흐음 후, 흐음 후~ 가쁜 숨을 내쉬며, 계단을 올라 복도를 따라 절름절름 교실 앞에 도착했다. 목을 가다듬고, 장갑을 껴서 미끄러운 손으로 교실 뒷문의 금빛 문고리를 꽉 잡고 서서히 돌렸다. 끼이익~ 소리와 함께 문이 빼끔 열렸다. 나는 그리로 ..
2009.12.21 -
여름 밤, 모깃불을 피워요!
2009.07.25 토요일 밤이 되자 텐트촌은 모기들이 나타나 시끄러웠다. 텐트촌 관리 아저씨가 가르쳐준 방식대로, 여기저기서 모깃불을 피우느라 바빠졌다. 나도 아저씨를 따라다니며 모기불 피우는 법을 익혔다. 텐트촌 가장자리에, 마른 소나무 잔가지가 짚더미처럼 수북이 쌓여 있는 데가 있다. 우리는 거기서 소나무 잔가지를 한 아름 주워들었다. 아빠는 우리 텐트 앞마당에 흙을, 꽃삽으로 싹싹 파서 둥근 구덩이를 만드셨다. 우리는 그 구덩이에 소나무 잔가지들을 넣었다. 그런 다음 아빠는 권총같이 생긴 화염 방사기의 끝을 잔가지에 겨냥하고 방아쇠를 딱~ 당겼다. 불은 한 번에 나오지 않고, 몇 번을 딱딱딱딱 하니까, 기다란 총 끝에서 시퍼런 불이 튀어나와 소나무 잔가지들을 감쌌다. 소나무 잔가지들에 불이 붙기 ..
2009.07.29 -
지각한 날
2009.06.15 월요일 나는 아침부터 이상한 꿈에 시달리다, 어느 순간 간신히 눈을 떠서 시계를 보았다. 오전 8시 40분! 순간 방안이 흔들리도록 "으악~ 완전 지각이다, 망했다~!" 하고 소리치며, 방바닥에 쌓여 있는 옷을 아무거나 입고, 가방을 들고 뛰어나갔다. "어? 상우야, 그냥 쉬지~." 하시는 엄마의 말소리를 뒤로한 채. 학교 가는 아이는 아무도 없고, 아파트 입구에서 엄마와 손을 흔들며, 유치원 버스를 타는 어린아이들을 보니 왠지 쓸쓸해졌다. 그보다 더 마음을 괴롭히는 건, 아무리 빨리 걸어도 지각을 면할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급하게 뛰어나오느라, 난 내가 밤새 아팠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걸을수록 기침이 콜록콜록 쏟아지고, 머리는 산처럼 무겁고, 하아하아~ 가슴이 쥐어짜듯 아팠다...
2009.06.18 -
못난이와 맹구 - 상우 여행일기
2008.04.16 수요일 펜션 앞마당에는 벚꽃 나무가 몇 그루 있었는데, 제일 굵은 벚꽃 나무 아래 낮은 울타리가 쳐 있고, 그 안에 하얀 개 두 마리가 살고 있었다. 한 마리는 우리를 보고 달려나와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며 흥분했고, 한마리는 뭐가 불안한 듯, 개집 안에서 끙끙대며 나오지 않았다. 둘 다 참 못생겼다. 아니 못생겼다기보다는 너무 쭈글쭈글했다. 몸에 털이 없고, 귀는 머리에 찰떡처럼 달라붙었고, 코는 납작하고, 얼굴에 온통 물결이 흐르는 것처럼 주름이 졌다. 그리고 머리랑 몸통은 땅땅한데 비해, 다리는 너무 가늘어서 걸음걸이도 비척 비척 힘들어 보였다. 우스꽝스러운 몸에 비해 두 눈은 초록색 구슬을 박아놓은 것처럼 크고 맑았는데, 똘망똘망 물기가 어려 있는 게, 순하다 못해 애처로워 보였다..
2008.04.17 -
사탕
2007.11.28 수요일 학교에서 영어 특강이 있는 월요일과 수요일은 수업을 마친 후 교실 청소를 두 명씩 번갈아가며 하는데, 오늘은 5학년 예슬이 누나와 내 차례다. 누나와 나는 교실을 반으로 나누어 비질하였다. 나는 책상과 의자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가며 먼지와 종이 쪼가리를 싹싹 쓸어담아 쓰레기통에 버렸고, 흐트러진 책상을 바로잡아 줄을 맞추었다. 청소가 끝나고 영어 선생님께서 잘했다고 막대 사탕 한 개씩을 주셨다. 나는 "고맙습니다!"하고, 사탕을 싼 종이 껍데기를 벗겨 잠바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사탕을 입에 물고 피아노 학원으로 가는데 사탕이 너무 달콤해서 나도 모르게 "음~"하고 눈을 감았다. 구슬 같은 동그란 사탕 알을 입 속에 넣고 굴려가며 먹었는데, 딸기 밀크 셰이크 맛이 혀끝부터 입 안..
2007.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