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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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집에서 잠들기는 어려워!
2010.12.03 금요일 어제 난 처음으로 외박하였다. 기말고사도 끝났으니 우리 반 지호네 집에서 자고 오겠다고 했는데, 엄마는 안된다고 그러셨고 아빠는 된다고 그러셨다. 내가 지호네 집에서 잔다고 하니까 은철이도 엄마한테 허락을 받아서, 우리는 셋이 같이 자게 되어 뛸 듯이 기뻤다. 지호와 은철이는 학교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한정거장 거리에 있는 아파트 단지에 산다. 지호네 집에서의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영화를 보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지호집의 수많은 카드를 모아서 카드 게임을 하고, 지호네 엄마가 정성스럽게 차려주신 저녁을 먹는 시간은 꼭 빠르게 흐르는 강물처럼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어느새 창밖이 진한 블랙커피 색깔처럼 어두워지고, 우리는 마루에 깔린 이부자리에 누웠다. 그런데..
2010.12.04 -
음악과 함께 떠나는 어거스트 러쉬의 모험
2007.12.07 금요일 를 보기 전에 나는 이 영화에 대해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무슨 내용인지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전에 읽었던 라는 책에서 내용을 알면 기대가 반으로 줄어든다는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영화 첫 장면에서 어거스트 러쉬가 넓은 초록색 갈대밭에서 두 손을 펼치고 흔들면 갈대들이 따라서 파도처럼 출렁거리는 걸 보고, 나는 무슨 어린이 마법사 이야기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곧 어거스트 러쉬는 마법사가 아니라 고아였고, 주위의 모든 소리를 음악으로 느끼는 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웃음이 나왔다. 비록 어거스트 러쉬처럼 심하지는 않지만, 나도 가끔 공원에서 바람을 맞으며 시원한 바람 소리를 음악처럼 느끼고, 내가 바람과 함께 녹아 온 세상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상상에..
2007.12.08 -
2007.09.20 굳은 아이들
2007.09.20 목요일 드디어 우리 반이 무대에 서는 차례가 되었다. 아이들은 연습을 한대로 무대에 있는 자기 자리를 찾아 섰다. 나는 맨 끝 줄 한가운데에 떨리는 마음으로 섰다. 7살 미술 학원 재롱 발표 때 이후로 친구들과 공연을 하려고 관객들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선 게 처음이라 쑥스럽고 떨렸다. 전주가 라디오를 타고 흘러 나오자, 우리 3학년 4반은 약간 당황하여 처음 동작을 놓쳤지만 그런데로 잘 움직여 나갔다. 그런데 공연을 하면서 옆에 친구들을 슬쩍슬쩍 보니 하나같이 얼굴이 굳어있고 몸 동작이 작았다. 앞에 선 아이들도 몸 동작이 작고 뻣뻣해서 이건 공연이 아니라 배고픈 아이들이 단체로 나와서 구걸을 하려고 어설픈 몸짓을 하는 것 같았다. 앞에서 동작을 맞춰주시던 담임 선생님 얼굴도 점점 굳..
2007.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