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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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는 산과 일어나는 도시
2011.12.08.목요일 오늘은 1학년의 마지막 기말고사가 끝나는 날이다. 솔직히 이번 기말고사는 중학교 첫 1년을 그냥 날려버린 것 같은 기분에 착잡하고 숨이 막혀온다. 나는 한숨에 밀려 풀잎이와 함께 나도 모르게 숨이 탁 트이는 산을 오르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 학교생활을 어떻게 했던가? 나의 학교생활에 대한 환상은 깨어졌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진실을 학교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학교 공부가 때로는 진실을 외면하는 수단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삶에 대한 고민 없이 아무 생각 없이 구는 아이들에게 질렸다. 공부를 못해서 학교 이름에 먹칠을 하는 학생은 필요 없다고 당당하게 훈화하시는 교장 선생님과 삶이나 사회 문제에 관심을 두면 학생은 공부해야지 그런 거 알아서 뭐하냐는 냉랭한 분위기의 ..
2011.12.12 -
하수구 물세례를 맞은 날
2011.05.20 금요일 지금 내 몸에서는 하수구의 폐수 냄새가 나고, 온몸이 찝찝하도록 꼬질꼬질 더러운 똥물이 묻어 있다. 게다가 하늘에서는 "투 툭, 투 톡~!" 비까지 내리지만, 신기하게도 전혀 비참한 기분이 안 든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필립이와 지홍이와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도롯가에 하수구 공사를 했는지, 하수구 뚜껑이 열려 있었다. 하수구 안에서 나온 걸로 보이는 형형색색의 물질과 비가 뒤섞여, 인도와 차도 사이에 신기한 물감 같은 액체가 엄청 고여 있었고 비릿한 냄새가 났다. 나와 친구들은 호기심이 들어 하수구 앞에 가까이 가 보았다. 구멍이 뚫린 하수구는 안까지 훤히 들여다보였는데, 구더기 같은 벌레들이 꾸물꾸물 거리고 있었다. 필립이는 "상우야! 이거 되게 불쾌하다! 빨리 가자!" 하..
2011.05.24 -
버스 정류장 찾아가는 길
2010.12.20 월요일 "은철아, 여기가 어디야?", "나도 몰라, 어헝헝~!" 어느새 해는 떨어지고 하늘은 주황색 감빛으로 물들었다. 금세 주위는 더 어두워지고, 도로 옆 숲에 숨어서 누군가가 우리를 몰래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붜우 워우~!" 도로 옆에 바로 난 기와집 마당에 묶여 있는 개들이 큰소리로 우리를 향해 짖었다. 나와 은철이는 서로 팔을 꼭 붙들고 "괜찮아, 저건 그냥 개야!" 위로하며, 개를 향해 답례로 동시에 "으루루루, 워워~!" 짖어주었다. 오늘 학교가 끝나고 나와 은철이, 지호는 모두 성환이 집으로 놀러 갔다. 성환이 집은 학교에서 몇 정거장 떨어진 곳에 있어서 버스를 타고 가야 했는데, 내가 타고 다니던 양주역까지 가는 마을버스와는 반대 방향이고 번호도 낯설었다. 처음엔..
2010.12.22 -
경복궁은 왜 이렇게 넓은 거지?
2010.10.22 금요일 오늘 우리 학교 6학년은, 내가 사는 동네에 있는 서울 서대문 형무소와 경복궁에 견학을 오는 날이다. 친구들은 단체로 버스를 타고 오지만, 나는 도시락을 메고 걸어서 서대문 형무소에 도착했다. '학교를 멀리 다니니 이런 일도 생기는군!' 나는 여유롭게 약속 시간에 맞추어 산책하듯 길을 나섰는데, 오늘따라 이른 아침 햇살이 얄밉게 따가웠다. 사직동 터널을 지나니 시야가 트이고, 대번에 독립문 입구가 보였다. "아~ 맑다!" 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형무소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우리 반 아이들과 만나, 곧바로 서대문 형무소로 들어갔다. 서대문 형무소는 고문을 모형해 놓은 곳이 공사 중이라 빨리 나와서, 버스를 타고 다음 목적지인 경복궁으로 이동하였다. 뭐랄까? 언제나 걸어 다..
2010.10.25 -
태양이 돌아오면
2009.07.14 화요일 나는 요즘 태양이 없는 나라에 사는 기분이다. 집에서 조금만 나가면 보이는 옥수수밭이, 비를 이기지 못하고 축 늘어져 있고, 꿋꿋해 보이던 나무들도 옆으로 힘없이 쓰러져있고, 비바람에 꺾인 나뭇가지가 전깃줄에 대롱대롱 걸려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요즘엔 학교에서 돌아오면, 흠뻑 젖은 책가방에서 젖은 책들을 꺼내 마룻바닥에 쭉 늘어놓고 말리는 게, 급한 일이 되었다. 그리고 다음날이 되면 겨우 마른 책을 가방에 넣고, 다시 콜록콜록거리며 비를 맞고 학교로 간다. 우산은 더 비를 막아주지 못해 쓸모가 없어졌고, 지난주 비폭탄을 맞은 뒤로 걸린 심한 감기가, 계속 비를 맞으니까 거머리처럼 붙어 떨어지질 않는다. 우리는 온종일 내리는 쇠창살 같은 장맛비에 갇혀, 이 불쾌감과 ..
2009.07.15 -
2007.01.02 새 단장한 피아노 학원
2007.01.02 화요일 나는 피아노 학원이 어떻게 변했을까 벅찬 마음으로 피아노 학원에 가고 있었다. 피아노 학원이 1주일 동안 공사를 하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피아노 학원 건물에 도착하자마자 페인트 냄새를 맡자 내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갈색으로 새롭게 칠한 문이 나를 반겨 주었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벽도 부분 부분 갈색으로 칠해져 더 활동적인 느낌이 났다. 가구도 위치가 바뀌었고 원장실도 바뀌고 무엇보다 내 마음을 끄는 것이 있었다. 학원 구석에 피아노 한 대가 놓여 있었고 그 위로 종 모양에 전등불이 따뜻하게 비추고 있어 마치 학원을 상징하는 대장 피아노 같아서 감탄을 했다. 내가 정신을 놓고 앞에 서 있기만 하니까 선생님이 "상우야, 서 있지만 말고 와서 가방 가져가서 피아노 쳐!" 나는..
2007.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