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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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밤 산책
2010.07.16 금요일 밤 9시, 엄마, 아빠는 갑자기 나갈 준비를 하시며 "엄마, 아빠 산책간다!" 말씀하셨다. 나와 영우도 얼떨결에 축구공을 가지고 따라나섰는데, 아빠는 신경이 쓰여서 산책을 못하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축구공을 놀이터 옆 풀숲에 묻어두고 본격적으로 밤 산책을 시작하였다. 낮에는 느낄 수 없었던 풀의 향기가 밤의 어둠과 고요에 떠밀려왔다. 밤 공기는 살짝 으스스 추웠다. 나는 소매가 없는 옷을 입어서 더 춥게 느껴졌다. 나는 달렸다. 빠르지는 않지만, 천천히 '흠하~ 흐음 하아~' 숨을 쉬면서 규칙적으로 팔을 저으며 달리니, 속도는 느려도 오랫동안 지치지 않고 달릴 수 있었다. 한참 달리고 잠시 멈춰 서서 뒤를 돌아다보았다. 이미 아파트 단지는 멀어져 있었고, 가족들은 한참 뒤에 따..
2010.07.17 -
헌법재판소 판결처럼 우울한 날씨
2009.10 31 토요일 점심을 먹고 축농증 치료를 받으러 상가 병원으로 가는 길이었다. 어제까지 아파트 단지마다 붉고 노란 나뭇잎이 땅바닥에 가득 뒹굴었고, 나뭇가지에도 빨간색 등불을 켜놓은 것처럼 예뻤는데, 오늘은 다르다. 오전부터 내리던 비가, 그동안 가을을 지켰던 풍성한 나뭇잎을 한 잎도 남기지 않고 모두 떨어내버렸다. 그래서 나뭇가지들은 바짝 말라서 쪼글쪼글해진 할머니 손처럼, 또는 X레이에 찍은 해골의 손뼈처럼 가늘가늘 앙상하다. 내가 조금만 건드려도 톡 부러질 것 같다. 우리 마음을 따뜻하게 밝혀주었던, 가을의 빨간 축제가 매일 열리던 길목은 이제 끝났다. 내가 걷는 길은, 차가운 비가 투툴투툴 내리는 추억 속의 쓸쓸한 길이 돼버리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우산 속에서 햇빛을 못 받아 어..
2009.11.01 -
선생님의 노래
2009.02.18 수요일 어제 담임 선생님께서 외국 연수에서 돌아오셨다. 4학년이 끝나기 전에 선생님 얼굴을 꼭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었는데. 갑자기 돌아오셔서 기쁨보다 얼얼함이 앞섰다. 선생님도 그러셨을까? 아주 먼 길을 달려와 '짠~' 하고 나타나셔서, 교탁 앞에 앉아 태연하게 일하시는 선생님 얼굴은 예전처럼 무표정했고, 입가엔 풀처럼 까칠까칠한 수염이 돋으셨다. 마치 선생님은 우리 곁을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오늘 종업식을 맞았다. 청소를 마치고 성적표를 나누어 받고 모두 자리에 앉은 다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여러분이 앞으로 친구로 만날 순 있겠지만, 4학년 송화 반이라는 이름 아래 모여서, 선생님과 함께 4학년 생활을 하는 일은 이제 없을 것입니..
2009.02.20 -
2007.09.19 고립된 학교
2007.09.19 수요일 1, 2교시에 청소년 수련관에서 내일 있을 학교 축제의 총연습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오는데, 구름이 잔뜩 낀 우중충한 하늘에서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마침 학교에 거의 다다른 우리 3학년 4반은 황급히 학교 안으로 피신하듯 뛰어들었다. 그런데 그때부터 오기 시작한 비가 급식 시간 끝나고 수업 시간이 끝나도 계속 소떼가 밀려오듯 퍼붓는 것이었다. 선생님께서 급식 시간부터 "우산을 안가져 온 사람은 집에 전화 하세요!" 하여서 공중 전화가 놓여있는 1층 후문과 별관 앞 복도는 전화하러 몰려 든 아이들로 넘쳐났다. 바깥에는 비가 "타다다닥!" 총을 쏘듯이 오고 있었다. 줄을 선 아이들은 다리를 떨기도 하고 비 오는 걸 보면서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2007.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