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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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북인더갭>에 숨은 뜻
2013.05.11 토요일 오늘은 중간고사가 끝난 주말이라 오랜만에 늘어지게 늦잠을 잤다. 눈을 뜨니 감기 기운 때문에 코가 막히고 온몸이 힘 빠진 고무줄처럼 이불 위에 푹 늘어진다. 다시 잠이 헤롱헤롱 들려고 하는 순간, 퍼뜩 오늘 북인더갭 출판사에 가기로 약속한 것이 떠올랐다. 나는 화다닥 화장실로 뛰어들어가며 엄마의 목소리를 듣는다. "상우야, 머리 감을 시간 없는데~ 약속 시간 늦겠다아~!" 나는 수도물을 틀어 머리에다 꽂아넣듯이 하고, 샴푸를 묻혀 주차작~ 주차작~ 머리를 감았다. 북인더갭은 일산에 있는데, 일주일 전 사무실을 다른 블럭으로 옮겼다고 한다. "엄마, 이사를 했으면 집들이 선물이 필요 해요!" 나는 들떠서 동네 시장 꽃집에서 꽃다발을 사들고 일산으로 향했다. 아빠는 힘차게 운전을 ..
2013.05.12 -
어설픈 합창
2011.07.15 금요일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우리 1학년 4반은 배화 여자중학교 강당으로 모여 에 나갔다. "아아아아~!" 소리가 한데 모여, 꼭 눈의 결정을 이루는 것처럼 아름다운 소리가 내 귀를 가볍게 울렸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와 우리 반 아이들의 사기는 점점 떨어졌다. 담임 선생님께서 음악 선생님이라는 이유로 학교 대회와 지역 예선도 걸치지 않고, 1주일간 연습해서 나가게 된 대회였다. 그런데 아이들은 합창대회에 나가기 싫어했고, 선생님께 "왜 우리 의사는 물어보지 않으셨어요?"라고 항의하는 아이도 있었다. 대회도 얼마 안 남아 연습을 빼먹는 아이들도 많았고, 남은 아이들도 열심히 연습하지 않았다. 그래서 사실 선생님도, 아이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 꼴찌인 것은 당연하고, 망신만 당하지..
2011.07.16 -
뿌와쨔쨔님과 저녁 식사를!
2011.02.16 수요일 스르르르~ 회전문이 열리고, 거기서 대학생처럼 젊은 아저씨가 저벅저벅 걸어나왔다. 그리고는 천천히 다가오더니, 오른손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을 총처럼 세워서 나를 가리키고 "상우님, 맞으시죠?" 하였다. 나는 "네, 맞습니다! 뿌와쨔쨔님!" 대답하였다. 오늘은 5년 만에 미국에서 한국으로 잠깐 짬을 내어 들르신, 유명한 블로거 뿌와쨔쨔님과 만나기로 한 날이다. 그래서 오늘은 학교에서 일찍 돌아와 깨끗하게 머리도 감고, 뿌와쨔쨔님과 만날 준비를 여유롭게 해서 나가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조금만 더 놀자는 친구들의 유혹에 못 이겨 결국 집에도 못 들리고,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허겁지겁 뿌와쨔쨔님을 만나러 광화문 올레스퀘어로 달려갔다. 다행히 약속시각에 늦지않아 올레..
2011.02.19 -
너의 꿈을 세계로!
2010.02.10 목요일 오늘 음악 시간은 언제나 그렇듯이, 음악 선생님께서 전쟁터에서 지휘하듯이 열정적으로 수업을 진행하셨다. 선생님은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단소 불기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상당히 미안한 이야기지만, 지금 우리나라는 여러분이 다 안정된 직업을 가진다고 보장할 수 없을 정도로, 경쟁이 심하고 직업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라고 말이다. 이 말씀은 내 귀를 타고 물처럼 흘러들어왔고, 나는 귀가 솔깃해지며 선생님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나는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차례대로 깨물었다. 이건 심각한 이야기를 들을 때 내가 하는 버릇이다. 여러분도 이 이야기가 듣고 싶지 않은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단소를 뷔익~ 퓌익~ 불며..
2011.02.12 -
친구 집에서 잠들기는 어려워!
2010.12.03 금요일 어제 난 처음으로 외박하였다. 기말고사도 끝났으니 우리 반 지호네 집에서 자고 오겠다고 했는데, 엄마는 안된다고 그러셨고 아빠는 된다고 그러셨다. 내가 지호네 집에서 잔다고 하니까 은철이도 엄마한테 허락을 받아서, 우리는 셋이 같이 자게 되어 뛸 듯이 기뻤다. 지호와 은철이는 학교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한정거장 거리에 있는 아파트 단지에 산다. 지호네 집에서의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영화를 보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지호집의 수많은 카드를 모아서 카드 게임을 하고, 지호네 엄마가 정성스럽게 차려주신 저녁을 먹는 시간은 꼭 빠르게 흐르는 강물처럼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어느새 창밖이 진한 블랙커피 색깔처럼 어두워지고, 우리는 마루에 깔린 이부자리에 누웠다. 그런데..
2010.12.04 -
2007.09.14 첩보원들의 학예회
2007.09.14 금요일 우리 반은 학예회 총연습을 하기 위해, 4층 다목적 강당으로 향했다. 아직은 우리 반의 연습 차례가 아니라서 강당 밖 복도에서 줄을 서 기다렸다. 아이들은 서로 마주보고 수다를 떨고 몸을 비틀고 털썩 주저앉았다. 또 우뚝 서 있기만 하는 아이도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이리 저리 돌아다니시기도 하고 다른 선생님과 이야기하시기도 하고 우리에게 무대에서 지켜야 할 몇 가지 사항을 말씀해 주시기도 하였다. 나는 다른 아이들과 이야기하기도 하고 몸을 비틀며 우리가 꼭 첩보 요원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 옷이 똑같다는 것 때문이었다. 비록 무대 의상이라 똑같이 맞춘 거지만 나는 왠지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지금은 첩보 요원들이 비밀리에 모여서 정보 정리 회의를 하는 것 같았..
2007.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