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향기

2008. 3. 2. 10:45일기

<봄의 향기>
2008.03.01 토요일

오늘따라 집안 공기가 텁텁하여 숨이 막혀 견딜 수가 없었다. 창문 밖에서 쨍쨍 빛나는 해가 나를 부르는 거 같았다. 방과 마루에서 먼지를 피우며 펄쩍펄쩍 뛰어놀다가, 기침을 심하게 해서 엄마에게 꽥 잔소리를 들었다. 책상 앞에 앉아서 컴퓨터를 켰다가 책을 폈다가 했는데 집중이 되지 않았다.

나는 더 참지 못하고 "내 심장이 타오르고 내 영혼이 요동치네요! 내 온몸이 굶주린 짐승처럼 근질거립니다! 그러니 나 놀러 나갈게요!"라고 쪽지에 써놓고 집을 나와버렸다. 나는 순식간에 공원까지 다다랐다. 공원에서 빌라단지로 접어드는 계단을 팡팡 뛰어내려, 우석이 집앞에서 벨을 힘차게 누르고 "우석아!" 소리쳤다.

우석이 집에 아무도 없음을 알고 다시 돌아 나와 그때부터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지난겨울 회색빛으로 칙칙했던 골목길들이 오늘은 이상하게 신선한 느낌이 났다. 갑자기 낡은 교회 지붕 꼭대기에서, 초록색 옷을 입은 요정이 비눗방울을 부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온 동네에 비눗방울이 송이송이 날리는 상상에 젖어 그중에서 제일 큰 방울을 따라 나도 달리기 시작했다.

어느 새 동네 한 바퀴를 다 돌고 다시 공원으로 돌아왔을 때, 함께 날아온 비누방울들도 하나씩 땅 위에 내려앉으며 터지기 시작했다. 방울이 터진 자리마다 뭐가 쑥쑥 올라오는 것 같아 무릎을 꿇고 기어다니며 천천히 살펴보고 냄새도 맡아보았다.

공원 잔디와 나무, 언덕엔 분명히 변화가 있었다. 한겨울엔 마른 풀이 너무 차갑고 뻣뻣해서 만지기도 싫었는데, 그 풀들이 따뜻한 물기를 머금고 있어 촉촉하였고, 여기저기서 싱그러운 냄새가 났다. 그리고 군데군데 초록색 풀잎이 보였다. 마치 회색 천지였던 머리털 사이에서 초록색 머리카락이 삐죽삐죽 돋아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머지않아 이 공원 전체에서 마법처럼 꽃봉오리가 퐁퐁 터지고, 나비가 날고, 나무들이 뿜어대는 초록색 숨을 쉴 것을 상상하니 황홀해서 그만 마른 잔디 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워 버렸다. 그러다가 나는 벌떡 일어나 학교로 달려갔다. 혹시 아이들이 나처럼 놀러 나오지 않았을까 했는데, 아직 학교 건물 현관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텅 빈 운동장에 황갈색 털이 말라붙은 꾀죄죄한 강아지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날보고 어서 와 놀자 하듯 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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