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안경

2009. 12. 19. 09:00일기

<새 안경>
2009.12.17 목요일

바람이 살벌한 저녁, 하아하아~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나는 엄마와 함께 상가에 새로 생긴 안경집 문을 힘껏 밀었다. 안경집 벽을 따라 쭉 늘어선 네모나고 기다란 유리 상자 안에는, 온갖 종류의 보석 같은 안경테들이 가지런히 누워 있었다.

어젯밤 자려고 안경을 벗다가, 며칠 동안 간당간당했던 오른쪽 테가 툭! 하고 떨어졌다. 그래서 오늘 안경테에 테이프를 감고 썼는데, 그것도 떨어져 버려 한쪽 테만 붙잡고 해적이 된 기분으로 수업을 들어야 했다.

주인아저씨는 "네, 아드님하고 다시 오셨군요~" 하며 밝게 맞아주셨다. 엄마가 오후에 아이 지킴이 활동을 하시다가, 내 부러진 안경을 고치러 안경점에 들렀는데, 심하게 부러져 고칠 수 없다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엔 테를 바꾸러 나와 함께 온 것이다. 주인 아저씨는 엄마와 함께 상의해서 찜 해놓았던 안경테 몇 가지를 보여주셨다. 아저씨와 엄마는 주로 파란색이나 검은색 선명한 테, 약간 날렵한 모양의 테들을 추천하셨다. 내 얼굴이 동그랗고 통통해서 날카로운 모양이 어울릴 거라고 하면서.

하지만, 아저씨와 엄마가 추천하는 테와 진열장에 있는 수많은 안경테 중, 확실히 저것이다! 느낌이 오는 테는 없었다. 어떤 것은 안경알이 너무 동글동글하고, 어떤 것은 눈과 눈 사이의 폭이 좁고, 어떤 것은 눈 위에서 붕 떠있는 느낌이 심했다. 오히려 내가 쓰던 빨간 테 안경이 나은 것도 같았다. '그냥 이 테를 안경 병원에 가서 고쳐볼 수는 없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동안 안경을 확 벗고 아무 데나 두고 거칠게 다룬 게 후회가 되었다. 그러면서 고르지 못하고 더 시간을 끌면 내가 까다로움을 떠는 아이처럼 보일까 봐 점점 불편해졌다.

그때 진열장 구석에, 전구 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투명한 안경테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엄마, 이거 어때요?" 하며 깨끗하고 아담한, 투명해서 거의 눈에 띄지 않았던 평범한 안경테를 가리켰다. 엄마는 그 테를 집어들고 "오우, 이거 꽤 괜찮은데~" 하셨다. 그래서 테를 그것으로 하려다가, 아저씨가 유리판 위에 내가 쓰던 안경알을 놓고, 불빛을 비춰보며 "자, 여기 안경알에 금 간 거 보이시죠? 기스가 상당히 많이 났네요. 그냥 해줄 수도 있지만, 너무 금이 많이 가서 저는 안경알도 바꾸는 걸 권해 드립니다!" 하시는 거였다.

나는 끔찍하게 상처가 난 안경알을 보니 새로 안경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돈이 더 들걸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엄마는 아저씨에게 겸연쩍게 웃으며 "조금 싸게 해주실 순 없을까요? 테만 바꾸러 올 생각이라서 이리될 준 몰랐네요~"라고 하셨다. 그러자 아저씨도 겸연쩍게 웃으며 "아유~ 그건 좀 곤란한데요, 그렇지 않아도 오픈 세일 상품인데~" 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엄마는 "어떻게 5천 원이라도 빼주시면 안될까요?" 또 물으셨다. 아저씨는 어흐흐~ 어색하게 "한정 세일 상품이라 물량도 이것밖에 없답니다~ 그러시면 차라리 옆에 있는 테로 하시죠. 저 테도 행사 중인데 더 저렴하답니다~" 하셨다.

엄마는 나를 보며 "상우야, 이 안경테 정말 맘에 드니?" 나직이 물으셨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나도 모르게 코끝이 찡그려졌다. 엄마는 곧 명랑한 목소리로 "그럼 이 안경으로 하겠어요! 아이가 원하는 걸로 해야죠!" 하셨다. 아저씨는 시력검사를 해주고 전보다 1도 정도 나빠졌다고 도수를 올려주셨다. 깨끗한 새 안경을 쓰니까 다시 세상을 맑게 잘 볼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뭔가 어색하고 약간 어질간질했지만, 새사람이 된 것 같았다. 나는 엄마 손을 잡고 "엄마, 감사해요! 이제 안경 살살 다루고 잘 쓸게요!" 했는데, 엄마는 자꾸 내 안경을 보며 "그래 잘 골랐다. 동그랗다고 날카로운 것만 고집할 필요는 없지!" 하고 웃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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