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이 돌아오면

2009. 7. 15. 08:43일기

<태양이 돌아오면>
2009.07.14 화요일

나는 요즘 태양이 없는 나라에 사는 기분이다. 집에서 조금만 나가면 보이는 옥수수밭이, 비를 이기지 못하고 축 늘어져 있고, 꿋꿋해 보이던 나무들도 옆으로 힘없이 쓰러져있고, 비바람에 꺾인 나뭇가지가 전깃줄에 대롱대롱 걸려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요즘엔 학교에서 돌아오면, 흠뻑 젖은 책가방에서 젖은 책들을 꺼내 마룻바닥에 쭉 늘어놓고 말리는 게, 급한 일이 되었다. 그리고 다음날이 되면 겨우 마른 책을 가방에 넣고, 다시 콜록콜록거리며 비를 맞고 학교로 간다.

우산은 더 비를 막아주지 못해 쓸모가 없어졌고, 지난주 비폭탄을 맞은 뒤로 걸린 심한 감기가, 계속 비를 맞으니까 거머리처럼 붙어 떨어지질 않는다. 우리는 온종일 내리는 쇠창살 같은 장맛비에 갇혀, 이 불쾌감과 어둠 속에서 우리를 건져줄 그 무언가를 애타게 기다리는 마음으로, 5학년 1학기의 마지막 주를 보내고 있다.

학교에서 공사 중인 본관 건물은 허구한 날 호스로 물을 빼내느라 바쁘고, 학교 벽과 교실과 복도는 물기가 마르질 않아 미끈하고 음침하다. 모든 것이 점점 회갈색으로 변해가고 있다. 마치 세상이 회갈색 고치에 둘러싸인 듯하다.

교실은 언제나 그랬듯이 아이들 떠드는 소리로 가득했지만, 빛이 사라져서 알맹이가 없어진 느낌이다. 아이들은 그저 흑백영화에 나와 돌아다니는 사람들처럼 싸늘해 보인다. 다만, 선생님께서 이 축축한 회갈색 분위기에 쌓인 우리 반에, 마지막 온기를 불어넣어 주려고 온갖 힘을 내어 수업을 이끄실 뿐...

그렇게 나는 지쳐가며, 내 머릿속에서 태양을 점점 잊어가는 듯했다. 그런데 오늘 늦은 오후, 감기약을 먹으러 부엌에 나왔다가, 부엌 베란다 창 앞에서 내가 잊었던 밝은 빛이, 나를 환히 비춰주는 걸 보았다. 아! 태양이구나! 그 예쁘고 빨그스름한 태양빛에 나는 넋을 놓고 감격에 젖었다.

나는 너무나 오랜만에 보는 따뜻한 태양빛을 꼭 껴안고 싶어서, 좀 더 가까이 가려고 식탁에서 일어서는 순간, 팔로 벽에 돋은 무언가를 툭~ 건드리고 말았다. 그것은 부엌 전깃불 스위치였다. 그러자 나의 태양은 한순간에 사라져버리고, 그 뒤로 회갈색 하늘이 커튼처럼 길게 늘어져 버렸다. 그것은 부엌 베란다 창에 반사된 전깃불이었던 것이다!

태양이 돌아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