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터플라이를 보고

2009. 2. 3. 08:40영화

<버터플라이를 보고>
2009.02.01 일요일

영우랑 <버터플라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이상하게 극장 안은 텅 비어 있었지만, 나는 이 영화가 참 맘에 들었다. 영화를 보면서 많이 놀라거나, 신이 나서 팔짝팔짝 뛰거나, 심장이 불타오르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소리없는 웃음이 술술 새어나왔다.

이 영화는 나비 수집가 줄리앙 할아버지와, 이웃에 사는 8살 난 여자 아이 엘자가, 이자벨이라는 보기 어려운 나비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다. 여행 내내 고집스런 나비 할아버지와 호기심 많은 엘자의 대화가 끊임없이 흐르고, 그 뒤로 부드러운 산맥과 바람에 춤을 추는 초록색 풀들이 달력 그림처럼 따라다닌다.

나는 줄리앙과 엘자의 대화에 귀가 즐거웠고, 나비 찾아 떠난 아름다운 산 풍경에 눈이 젖었다. 엘자는 너무 어려서 말도 안되게 줄리앙에게 끝없이 질문을 퍼붓고, 줄리앙은 귀찮아 하면서도 꾸역꾸역 대답을 해주는데, 그게 하나하나 가슴에 와닿았다. 엉뚱하지만 내가 궁금해하던 것이 엘자의 물음 속에 있었고, 내가 듣고 싶었던 답이 줄리앙의 대답 속에 있었다.

"2050년이 되면 150살까지 살 수 있대요!", "아무리 오래 살아도 인생은 한순간이란다. 억만년을 살 것처럼 버둥거리지만, 다 한순간이야. 한순간, 또 한순간, 틱! 톡! 틱! 톡!", "별똥별은 뭐예요?", "하느님의 머리카락이지!" 나는 줄리앙 할아버지가 처음엔 외롭고 쓸쓸하며 나비 수집만 할 줄 아는 꽉 막힌 할아버지인 줄 알았다. 그러나 줄리앙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으며 인생을 제대로 알고 깊이 겪어본 사람이, 나비 수집도 잘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엘자는 미혼모 가정의 아이로 자란 불쌍한 아이지만, 꼭 불행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줄리앙 같은 좋은 할아버지를 만나 진짜 인생 경험도 하고, 언젠가 나비처럼 아름다운 날개를 활짝 펴리란 소중한 꿈을 갖게 되었으니까! 이렇게 재밌는 영화를 나와 영우 또래의 아이들이 많이 와서, 극장 안이 꽉 차도록 보았다면 좋지 않았을까?

난 지금도 눈에 선하다. 높은 산 위에 시원하게 펼쳐진 풀밭, 산바람에 머리카락처럼 휘날리는 풀들, 공기마저 초록색일 것 같은 짙은 브로콜리 색 숲! 엘자가 앉아서 생각하던 바위 언덕, 유리처럼 투명한 샘물 속에 아롱거리는 물고기, 밀렵꾼에게 총맞은 불쌍한 사슴의 죽음, 줄리앙과 엘자가 나누어 먹던 샐러드 도시락까지, 모두 다 내가 직접 보고 만지는 것 같은 멋진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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