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9.24 할아버지의 다리

2007. 9. 24. 00:00일기

<할아버지의 다리>
2007.09.24 월요일

보름달이 밝게 뜬 추석 전날 밤, 막내 고모와 나는, 술에 취해 쓰러지신 할아버지의 다리를 주물러 드렸다.

나는 할아버지의 다리를 두 손으로 한 웅큼 잡았다가 놓았다가 하며 꾹꾹 주물러 드렸는데 할아버지께서 "상우가 손 힘이 아주 좋구나." 하셨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더욱 힘을 주어 정성껏 주물러 드렸는데, 할아버지께서 "가운데 다리는 주물르지 말아라." 하시는 것이었다. 고모에게 "가운데 다리가 뭐예요?" 하고 물었더니 고모가 어색하게 웃으면서 "가운데 다리는 여기를 말하는 거다." 하며 할아버지의 고추 부분을 가리켰다.

할아버지 다리를 계속 주무르니까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아빠 다리도 엄마 다리도 내 다리도 살이 있어 통통한 편인데 할아버지는 뼈만 남아 앙상한 나뭇가지 같았다. 나는 내 살이라도 떼어 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어 울적했다.

다 주물러 드리고 나니까 손이 마비된 듯 얼얼했지만 마음은 홀가분했다. 할아버지께서도 잘 주무시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의 다리
<집 앞 공원 안에 있는 조각인데 무얼 만든 건진 잘 모르겠지만 할아버지 요가 체조하시는 모습이 떠올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