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밤 산책

2010. 7. 17. 09:00일기

<여름 밤 산책>
2010.07.16 금요일

밤 9시, 엄마, 아빠는 갑자기 나갈 준비를 하시며 "엄마, 아빠 산책간다!" 말씀하셨다. 나와 영우도 얼떨결에 축구공을 가지고 따라나섰는데, 아빠는 신경이 쓰여서 산책을 못하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축구공을 놀이터 옆 풀숲에 묻어두고 본격적으로 밤 산책을 시작하였다. 낮에는 느낄 수 없었던 풀의 향기가 밤의 어둠과 고요에 떠밀려왔다. 밤 공기는 살짝 으스스 추웠다. 나는 소매가 없는 옷을 입어서 더 춥게 느껴졌다.

나는 달렸다. 빠르지는 않지만, 천천히 '흠하~ 흐음 하아~' 숨을 쉬면서 규칙적으로 팔을 저으며 달리니, 속도는 느려도 오랫동안 지치지 않고 달릴 수 있었다. 한참 달리고 잠시 멈춰 서서 뒤를 돌아다보았다. 이미 아파트 단지는 멀어져 있었고, 가족들은 한참 뒤에 따라오고 있었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엄마, 아빠, 영우를 기다렸다.

나는 컴컴한 도롯가에 서 있었다. 드문드문 보이던 건물들도 안보이고, 이제는 도로 양옆으로 펼쳐진 넓은 논 밖에 안보였다. 시원한 바람이 땀을 닦아주었다. 나는 또 달렸다. 그 누구도 나를 막아서지 않은 채로 풀냄새를 한껏 들이키며, 쏟아져 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달렸다. 기분이 좋았다. 옛날에는 살짝만 뛰어도 지치며 죽을 듯이 기침이 쏟아져 나왔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릴 수 있다.

감격이 밀려왔다. 달리는 짜릿함! 탁~ 땅을 밟을 때의 경쾌한 느낌! 시원하게 날아가는 땀! 나는 더 다리를 크게 벌리고, 코를 더 크게 해서 흠~ 흠~ 숨을 들이켜고, 팔은 고장 난 듯, 바람에 흔들리는 빨래처럼 너덜너덜하게 휘저었다. 그러다 다시 달리는 걸 멈추고 가족을 기다리며, 잠시 가슴에 손을 얹었다. 꼭 심장이 튀어나올 듯이 풍팡풍팡! 쉬지 않고 뛰었다.

나는 이제 뛰기를 멈추고 가족들과 같이 밤의 풍경을 감상하며 걸었다. 중간 중간 얼굴이 가로수 거미줄에 걸려서, 아빠가 준 겉옷을 휘두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도로의 끝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길에는, 바로 옆에 펼쳐진 밭의 풍경을 구경했다. 고추밭의 하얀 고추꽃은 꼭 우리를 숨어서 보듯이, 고춧잎 그늘에 살짝살짝 숨어 있었다. 그리고 아주 희한한 광경을 보았다. 바로 수박밭! 넓게 펼쳐진 수박 잎사귀 속에 탱탱한 수박이 숨어 있었다.

아주 초록색으로 영글 영글 탐스러워 보이는 것부터, 아직 연녹색으로 덜 여물어 작은 것까지! 우리가 풀숲에 숨겨놓은 축구공처럼 뒹굴거리고 있었다. "아빠, 우리 하나 서리할까요?" 나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나긋나긋 느끼하게 농담을 던졌다. 아빠도 "한번 해볼까? 그런데 들키면 감옥 가!" 하며 헤헤~ 웃으셨다. 나는 푸른 넝쿨 사이로 보이는 수박밭과 살짝 웃는 고추밭이, 신비한 마법의 보물 밭 같았다. 어느새 검은 하늘 커튼에 보석처럼 빛나는 별이 박혔다. 나도 여기 빠질 수 없단 듯이...

여름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