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교과서 받는 날

2009. 12. 21. 09:01일기

<새 교과서 받는 날>
2009.12.19 토요일

아침에 중이염과 축농증이 다시 겹쳤다. 머리가 어지럽고 목이 붓고, 기침이 쉬지 않고 커헉~ 커어~! 터지면서, 결국 제시간에 등교를 하지 못했다. 학교에 간신히 전화를 하고 죽은 듯이 잠들었다가, 늦은 3교시 시작할 때서야 나는 학교에 도착했다.

내가 쉬지 않고 학교에 간 이유는, 오늘 새 교과서를 받는 날이기 때문이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책도 좋지만, 매년 새 교과서를 받는 일은, 큰 상을 받는 것처럼 가슴을 뛰게 했다. 나는 흐음 후, 흐음 후~ 가쁜 숨을 내쉬며, 계단을 올라 복도를 따라 절름절름 교실 앞에 도착했다.

목을 가다듬고, 장갑을 껴서 미끄러운 손으로 교실 뒷문의 금빛 문고리를 꽉 잡고 서서히 돌렸다. 끼이익~ 소리와 함께 문이 빼끔 열렸다. 나는 그리로 몸을 밀어 넣었다. 내가 늦을 때면 언제나 그랬듯이 뒤쪽에 앉은 아이들 모두, 구슬처럼 동그래진 눈을 하고 해바라기처럼 휙 꺾어져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오늘은 앞줄에 앉은 아이들도 고개를 돌려서 "상우야, 괜찮니?", "선생님, 상우 왔어요오~!" 하고 외쳤다.

마침 아이들에게 6학년 교과서를 나누어주시며 교실 뒤쪽에 계시던 선생님은, 화들짝 놀라며 내 쪽으로 오셨다. "상우야, 괜찮니? 많이 아파? 그냥 집에서 쉬지, 왜 학교에 나왔어? 아프면 얘기해!" 선생님은 언제나 그랬듯이 깊은 표정으로 나를 걱정하셨다. 학기 내내 나 때문에 얼굴에서 걱정이 떠나지 않으셨던 선생님! 나는 왠지 마음이 아팠다.

내 자리로 돌아가서 목도리를 풀고 모자를 벗고, 장갑도 벗고 신발주머니와 가방을 걸어놓고 앉으려는데, 앞자리에 앉은 인호가 뒤로 확 돌아 얼굴을 바싹 들이대며, "상우야, 괜찮니?" 하고 물었다. 나는 눈을 거의 닫은 채로 살짝 뜨고, 입을 조금만 움직여서 "응, 괘안아~" 하고 힘없이 말했다. 나는 내가 교과서 받는 시간에 맞춰온 게 다행이라 생각했다.

아이들은 선생님께서 나눠주신 6학년 새 교과서를 투덕투덕 모아서, 책가방 안에 꾸역꾸역 넣느라 무지 끙끙대었다. 그래서 선생님께서는 모두 15권의 교과서를, 방학 식을 할 때까지 앞으로 남은 3일 동안 5권씩 나누어 가져가라고 하셨는데, 그걸 우기고 한꺼번에 다 가져가겠다는 아이들이 많았다. 앞에 앉은 인호도 교과서를 한꺼번에 넣어서 터질 것 같이 불룩한 가방을 보여주며, "훗, 상우야, 나는 이거 한꺼번에 다 넣었다! 미션 임파서블!" 하며 자랑하였다. 나는 이럴 줄 알고 가져온, 천으로 된 쇼핑백에 책을 한 권씩 차곡차곡 쌓아 넣었다.

아이들은 책을 챙겨 넣으며 땀을 뻘뻘 흘리기도 하고, 끝나가는 5학년이 믿어지지 않는 듯이, 6학년 책을 들고 가만히 뚫어져라, 바라보기도 하였다. 또 어떤 아이는 새 책에다가 벌써 자기 이름을 쓰고, 책을 펼쳐보며 미리 6학년 지식의 세계로 푹 빠진 아이도 있었다. 나는 5학년 한해도 이렇게 가는구나! 이제 새로운 시작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번 5학년을 마치고 전학을 가야 하기 때문에, 이 책은 앞으로 내가 가야 할 새로운 땅의 지도처럼 절박하게 느껴지고, 완전히 새로 시작하는 6학년의 해가, 내 몸속으로 스며드는 것처럼 부글부글 전율이 일었다.

새 교과서 받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