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판결처럼 우울한 날씨

2009. 11. 1. 09:17일기

<헌법재판소 판결처럼 우울한 날씨>
2009.10 31 토요일

점심을 먹고 축농증 치료를 받으러 상가 병원으로 가는 길이었다. 어제까지 아파트 단지마다 붉고 노란 나뭇잎이 땅바닥에 가득 뒹굴었고, 나뭇가지에도 빨간색 등불을 켜놓은 것처럼 예뻤는데, 오늘은 다르다.

오전부터 내리던 비가, 그동안 가을을 지켰던 풍성한 나뭇잎을 한 잎도 남기지 않고 모두 떨어내버렸다. 그래서 나뭇가지들은 바짝 말라서 쪼글쪼글해진 할머니 손처럼, 또는 X레이에 찍은 해골의 손뼈처럼 가늘가늘 앙상하다. 내가 조금만 건드려도 톡 부러질 것 같다.

우리 마음을 따뜻하게 밝혀주었던, 가을의 빨간 축제가 매일 열리던 길목은 이제 끝났다. 내가 걷는 길은, 차가운 비가 투툴투툴 내리는 추억 속의 쓸쓸한 길이 돼버리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우산 속에서 햇빛을 못 받아 어깨를 움츠린 모습이 불안해 보인다. 날씨와 사람의 기분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하는데, 오늘따라 머리가 어질 하고 나 혼자 남은 기분이 든다.

문득 나는 엊그제 보도된 헌법재판소의 미디어법에 대한 판결이, 지금 이 날씨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헌법재판소에서는 미디어법 투표 과정에서 위법하였지만, 법안은 유효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최고의 기관으로 알고 있던 헌법재판소가, 왜 이런 억지로 쥐어짠 듯한 이상한 판결을 내린 것일까? 만약 나에게 외국인 친구가 있어서 이 사실을 물어본다면 정말 망신스럽고 창피하게 느껴질 것 같다.

왠지 앞뒤가 안 맞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있기 전엔, 용산 참사 가족들에 대한 중형선고 뉴스를 보았다. 검은 상복을 입은 가족들은 아직 정부의 사과도 받지 못하고, 상도 치르지 못한 채 억울해하며 눈물을 쏟았다. 내가 보기에 용산 참사 가족들은 더 잃을 것이 없을 정도로 끔찍한 슬픔을 겪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법은 힘없는 사람들의 권리를 지켜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힘없는 사람들 까불지 마! 하고 으름장을 놓은 것 같다. 나도 덩달아 강압적인 판결을 받은 아이처럼 맥이 풀린다.

답답하다. 마치 눈앞에 정답이 있는데도 눈 딱 감고 이건 정답이 아니야! 하고 우기는 것 같다. 그리고 지금 날씨는 헌법재판소에 씌워진 날씨 같다. 헌법재판소가 답답한 구름에 갇혀서 햇빛을 보지 못하는 것 아닐까? 오늘 이 거리는 온통 빛을 빼앗아버리고, 추위만을 재촉하는 비가 내려서 나는 힘이 빠지고 우울하다. 어두운 구름 속에 내리는 이 비는, 나의 자유를 가두는 감옥 같아서 싫다. 그래도 나는 그려본다. 구름을 뚫고 나가면 어딘가에 밝게 빛나고 있을 태양이 분명히 있을 거야! 자꾸만 저 구름 너머 어딘가를 한없이 바라본다!

헌법재판소 판결처럼 우울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