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에서 읽은 시

2009. 3. 11. 08:34일기

<화장실에서 읽은 시>
2009.03.10 화요일

급식을 먹고 나서 나는 2층 화장실로 향했다. 우리 학교는 층마다 화장실벽에, 액자에 시를 써서 걸어놓았는데, 난 쉬는 시간에 화장실을 골고루 돌아다니며 시를 읽는 걸 즐겼다.

단 2층 화장실은 한 번도 안 가봐서 오늘은 특별히 들러본 것이다. 세면대 위쪽에 붉은 보리밭 그림을 바탕으로 아름다운 시가 쓰여있었다. 나는 그 액자에서 가장 가까운 소변기에서 쉬를 하며 시를 읽었다.

'여울에서 놀던 새끼 붕어, 다 커서 떠나고, 여울은 그때 그 또래 꼭 똑같네! 동네 아이들이 뛰어놀던 골목길, 아이들은 다 커서 떠나지만, 그 골목길은 그 또래 그대로이다!'

이 시를 읽고 나는 순간 멍해졌다. 뭔가 많은 느낌과 생각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마치 우리가 어릴 때는 엄마 아빠 품에 잘 놀다가, 크면 엄마 아빠 품을 떠나 뿔뿔이 흩어져 가버리고, 부모님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우리를 그리워하고 늙어가는 그런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가 어른이 되면, 엄마 아빠를 신경 쓰고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말아야지 생각하면서도, 왠지 마음이 싸르르 울적해졌다. 내가 이제 5학년이 되니, 어린 시절에 겪었던 일들이 자꾸 떠오르면서 벌써 덩치가 고릴라만큼 커져 버린 나 자신이 안타까웠다. 만약 내가 더 커서 내가 놀던 자리에 돌아온다면, 그 길은 나를 알아볼까?

아마 그 골목길이 나를 알아보고 반가워하기 전에, 나는 커버린 내가 미안해서 움찔할 것 같다. 난 왜 이렇게 빨리 크는 걸까? 아직도 초등학교 입학할 때 엄마 손을 잡고, 기대에 넘쳐 깡충깡충 학교 가던 길이 눈앞에 생생한데...  5학년이 되니까 내 또래 아이들은 별로 변함이 없는 것처럼 굴지만, 나는 5학년이 아니라, 50살이 된 것처럼 많이 커버린 기분이다.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겠지만, 나는 앞으로 2년 뒤엔 다시는 초등학교에 다니지 않겠지... 내가 너무 생각을 오래 하느라, 화장실 안에 아이들이 다 빠져나가고 사막처럼 조용한 것도 몰랐다. 또 바지를 너무 오래 내리고 서 있어서 나는 어마나~ 하며 깜짝 놀랐다. 나는 얼마 남지 않은 5교시 수업 시간이, 어린 시절에 탈 수 있는 마지막 놀이 열차인 것처럼, 급하게 교실로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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