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루치아노 파바로티

2009. 3. 3. 08:25일기

<어린 루치아노 파바로티>
2009.02.28 토요일

드디어 피아노 학원 연주회 날이 열렸다. 점심을 먹고 학원에 모여 모두 버스를 타고 양주 문화 예술 회관으로 갔다. 햇볕은 따습고 바람은 쌀쌀했다.

공연장에 들어가니 내가 가장 고민하던 문제가 닥쳐왔다. 바로 연주할 때 입을 연미복을 갈아입는 것이었다. 며칠 전부터 나는 '연주회 때 입을 옷에, 내 몸에 맞는 사이즈가 있을까?' 궁금했다.

지난해 피아노 학원 연주회에서는 겨우 맞는 옷을 찾기는 하였지만, 연주회 내내 너무 꽉 껴 숨이 막혔었는데... 남자 아이들은 공연장 복도에서 디자이너 아줌마가 옷을 나눠주셨다. 까만 바지는 그런대로 잘 맞고 시원하고 느낌도 비단처럼 매끄러웠다. 윗옷을 벗으려는데, 그때 여자 아이들이 우르르 무엇을 물어보려고 몰려와, 나는 남자 화장실로 가서 갈아입었다.

나는 두 개의 세면대 사이 마른 공간에 연미복을 놓고, 안에 입을 블라우스를 집어올렸다. 그 블라우스는 가운데 단추를 빼놓고 전부 백조처럼 하얀색이었다. 그리고 단추 양옆으로 물결 모양 레이스가 너불너불 달려있었다. 먼저 한쪽 팔을 블라우스 팔에 살살 집어넣고, 다른 팔로 소매를 쭈욱 잡아내리고, 나머지 한쪽 팔도 그렇게 입었다.

블라우스 단추를 잠그지 않은 채 거울을 보며, 일부러 눈썹을 찌푸리고 눈을 부라리며 표정을 험악하게 만들었다. 그러니 건방지고 뭔가 얼떨떨한 아이 같아 보였다. 이번엔 단추를 깍듯하게 다 채우고 미소를 지었더니, 조금 전의 터프가이는 온데간데 없고, 우유를 뒤집어쓴 듯한 부드러운 남자가 거울 속에 있었다.

나는 신이 나서 있는 대로 폼을 잡고, 과장되게 두 팔을 펼쳐 검은색 연미복을 샥~ 입었다. 뭐라고 할 것도 없이 내 몸에 딱 맞았다. 돌아가신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 아저씨의 어릴 적 모습이, 이렇지 않았을까 상상하며 음허허~ 소리 내 웃었다. 갑자기 화장실 밖에서 "얘~ 연주회 시작한다! 뭐하니?" 하는 소리에 놀라, "네~ 루치아노 파바로티 가요!" 하며 뛰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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