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타기

2009. 2. 13. 08:41일기

<나무 타기>
2009.02.12 목요일

영우와 피아노 학원 차를 기다리는 동안, 놀이터 나무에 올라가 보았다. 그것은 굵은 나무를 원기둥 모양으로 가공해서 놀이터 안에 말뚝처럼 박아놓고, 몸통 여기저기에 도끼로 찍은 듯한 흠을 만들어, 그것을 잡거나 밟고 올라갈 수 있게 만든 거대한 놀잇감이었다.

나무의 감촉은 매끄러운 돌 같았다. 나는 먼저 왼발을 제일 낮은 틈에 딛고, 조금 더 높은 틈에 오른발을 디뎠다. 일단 그렇게 몇 번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해보았다.

그러자 요령이 붙었다. 나무 둥치를 안고 허리와, 등, 어깨 순서로, 뱀처럼 양쪽으로 번갈아 흔들며 올라가니, 발을 딛기가 더 쉬웠다. 정말로 새 알을 훔쳐 먹으려고 나무 위를 올라가는 뱀이 된 기분으로, 나는 신이 나서 어깨춤을 추듯이 더 심하게 몸을 흔들며 올라갔다.

나는 내 키보다 두 배는 더 높은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가 아래를 내려보았다. 놀이터 의자가 앉은뱅이처럼 낮아 보이고, 배와 오두막, 놀이터 전체가 작은 무인도처럼 보였다. 다음번에 석희와 경훈이와 나무 꼭대기에 누가 더 빨리 올라가나 놀이를 해야지, 그러려면 나무타기 연습을 매일 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가슴이 꽉 찼다.

피아노 학원에서 돌아올 때도, 운전기사 아저씨께, 놀이터 앞에 내려달라고 부탁하였다. 나는 또 나무쪽으로 후닥닥 달려갔다. 영우는 아까 놀이터에서 두 번씩이나 넘어져 다리가 아파서 빨리 집에 가고 싶다고 잉~ 짜증을 부렸다. 나는 나무를 딱 한 번 만 타겠다고 영우를 살살 달래서, 의자에 앉혀놓고 나무 위로 올라갔다.

나무 위로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영우는 무언가를 애원하는 다람쥐처럼 눈만 또랑또랑해서 나를 바라보았다. "형, 나도 나무 타고 싶어!", "음~ 조심해서 해야 돼!" 영우는 일어나서 절뚝절뚝 어설프게 나무 타기를 시도했다. 그리고 곧이어 나와 비슷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다리가 아프다고 찡찡대던 아이는 온데간데 없고, 날렵한 원숭이 한 마리가 금세 나무 위로 날듯이
올라왔다. 영우는 나무에서 내려와, 다시 곰 인형같이 눈을 똘망똘망 처량하게 하고, "형아, 다리가 아픈데 업어주면 안 돼?"하였다. 나는 대답 대신 웃으며 영우를 으랏차차! 업고, 집까지 쉬지 않고 걸었다. 나는 좋은 형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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