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 날리는 물총놀이

2008. 8. 6. 09:01일기

<더위 날리는 물총놀이>
2008.07.31 목요일

오후 6시쯤 나랑 영우, 예민이와 석희는, 예민이 집 앞에 모여 물총놀이를 시작하였다. 우리 넷은 동시에 손바닥을 위아래로 아무거나 내서, 같은 면을 낸 사람끼리 짝을 지었다. 석희와 짝이 된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집에서 생수병에 담아온 수돗물을 물총 물탱크에 가득 채웠다.

나는 다리를 벌리고 엉덩이를 조금 뒤로 빼서 등을 곧게 펴고, 두 손을 앞으로 쭉 내밀어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자 내 작은 물총에서 코브라가 독을 쏘듯 짜릿하게 '촤아' 하고 가는 물줄기가 앞으로 터져 나왔다. 영우와 같은 편이 된 예민이는, "영우가 우리보다 훨씬 어리니, 내가 항복하기 전까지 절대로 영우를 쏘지 말라!"고 부탁하였고, 그래서 우리는 예민이에게만 물총을 쏘았다.

처음 물총이 발사됐을 때만 빼고 내 물총은 출력이 점점 떨어져 갔다. 대신 석희 물총은 내 것보다 훨씬 더 큰 바주카포 모양이고, 보조 물총까지 달렸고, 방아쇠도 2개여서 강력한 힘으로 멀리까지 쏠 수 있었다. 예민이 물총도 권총처럼 작았지만 한번 쏘면 2발이 나가는 아주 날렵하고 성능이 뛰어난 물총이었다. 석희와 예민이 것은 장거리까지 시원하게 뻗어나가는데, 나와 영우건 '찍찍'하며 단거리만 나갔다.

예민이는, 석희와 내가 쏘는 물총을 맞으면서, 머리에 맞지 않게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나를 향해서 저벅저벅 걸어왔다. 석희는 잽싸게 도망쳤지만, 나는 도망치지 않고 계속 예민이에게 쏘았다. 그런데 예민이는 터미네이터처럼 바로 내 앞까지 다가와 허리를 곧게 펴고,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한 손으로 물총을 든 내 손목을 붙들고 꼼짝 못하게 한 뒤, 나머지 한 손으로 물총을 내 가슴에 마구 마구 쏘아댔다.

나는 거세게 몸을 흔들며 예민이에게 잡힌 한쪽 손을 빼내려고, 손목 근육에 힘을 주어 위아래로 흔들었다. 드디어 예민이 손에서 벗어나자 나는 후다닥 도망을 쳤다. 나는 마당 주차장 큰 지프차 뒤에 몸을 숨겼는데, 석희도 거기 숨어 있었다. 예민이가 가까이 오면 빈틈을 봐서 기습하기로 석희와 소곤소곤 거리고 있는데, 마침 예민이가 우리 근처로 다가왔다.

나와 석희는 예민이 앞으로 뛰어나와, 다리를 모으고 허리를 굽혀서 또다시 물총 세례를 퍼부었다. 그러자 예민이는 아까와 똑같이 우리를 향해 돌진해왔는데, 이번에는 더 빠르게 달려왔다. 그리고 이번에는 내가 아니라, 석희를 향해 달렸다.

석희는 윗몸을 바짝 낮추고 물총 든 두 손을 닭 날개처럼 뒤로 뻗은 채, 냅다 뛰었다. 석희와 예민이는 쫓고 쫓기며 빙글빙글 원을 그리면서 뛰었고, 그 너머로 붉은 해가 지고 있었다. 빠르게 달리며 장거리 물총을 발사하는 석희와, 물총을 아끼며 달려들어 상대방을 무력화시키면서, 단거리를 발사하는 예민이의 모습은 매와 호랑이의 접전 같았다.

내가 골목에서 예민이를 기습하려고 나오는데, 갑자기 영우가 달려들어 물총으로 내 등을 '얍, 얍!'하고 때리더니 쪼르르 도망가 버렸다. 나는 영우에게 직접 쏘는 대신 땅바닥에 칙칙 쏘아대며 분풀이를 하였다. 넷 다 물총에 물이 떨어지자 어느새 남아있던 빨간 노을도 사라지고, 주위가 어둠으로 시퍼래졌다.

석희는 집에 가서 물을 더 담아오겠다고 했고, 예민이도 계속 놀자고 했지만, 나는 엄마가 걱정하시지 않을까?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영우가 돌아오는 길에 "형아, 엄마가 늦었다고 혼내면 어떡하지?"했다. 나는 "음~ 그냥 혼나자!" 하며 영우 손을 꽉 잡아 주었다. 우리는 온몸이 수영장에서 나온 것처럼 홀딱 젖어 시원하게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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