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동네

2014. 3. 6. 23:13일기

<옛날 동네>

2014.02.25 수요일


내가 살아온 시간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하지만 삶이 얼마나 짧았는가에 상관없이 옛날은 존재하는 법이다. 나의 옛날은 성균관대학교 앞의 반지하방 바닥에서 처음으로 기억이 시작된다. 그이전의 기억은 거의 없다.


말 못하던 아기시절, 대학로의 반지하방에서 찔금찔금 움직였던 기억은 그로부터 몇년이 흐른 뒤 4살인가 5살인가, 처음 미술학원에 갔을때 기억부터 콸콸 흘러 넘친다. 그 기억의 배경은 바로 경기도 고양시다. 시간이 흘러 많은 배경을 지나쳤지만, 내 기억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배경은 아직도 고양시다.


그런 고양시가 지금 다시 한번 내 기억의 배경이 되었다. 엄마, 아빠는 예전부터 이사를 희망하고 계셨고, 이사간다 이사간다 말씀하셨는데 바로 나는 지금, 다시 경기도 고양시의 주택가에 살게 되었다. 1월에 고양시 일산동구 정발산 마을로 이사하였지만, 졸업과 입학 문제로 외할머니댁과 이사한 집을 오가는 기러기 생활을 하였다. 처음 이사온 며칠은 새로운 집에 적응이 안 돼 새벽 6시에 간신히 잠이 들었다.


이사온 집 앞에 24시간 편의점이 있어서 창문으로 빛이 새어들어오고, 보일러를 땠을때 옛날에 살던 집과는 달리 웃풍이 없어서 예전처럼 이불 속에 들어갔을 때, 코는 추운데 몸은 노곤노곤 포근하다는 기분을 느낄 수가 없어서였다. 이사온 첫날과 둘째날, 나는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어서 밤새도록 책을 읽다가, 일부러 늙은 할머니를 떠올리며 감상에 젖은후 눈물을 펑펑 쏟게 해서 몸을 지치게 만들고 기절하듯 잠 자는 기이한 방법으로 잠을 청했다.


이사온지 한참 지난 후에도 자꾸 집 밖으로 나갔다. 할머니 생각만 하면 고맙고 마음이 울적하여 온동네를 걷기만 했다. 아직은 추운 날씨 때문에 아무도 없는 집 근처 어린이놀이터에서 갖가지 기괴한 폼으로 그네를 탔다. 이게 몇 년 만에 타는 그네인가? 그네를 실컷 탄 나는 마음이 어려져 지하철역 나오는 일산 시내까지 걸었다. 여기는 정발산 끝자락이라 시내 지하철역까지는 각오하고 걸어야 하는 거리다. 내킨 김에 지하철을 타고 멀리 양주 친구 집에서 몇밤 자고 온 적도 있다.


나는 차가운 겨울 바람에 볼이 냉동홍시처럼 땡땡해질때까지 일산의 거대한 바둑판 같은 거리를 쏘다녔다. 일산의 라페스타 알라딘 중고서점은 내가 좋아하는 곳이 되었고, 한번은 백석역 앞에 있는 북인더갭 출판사를 찾아 무조건 걸어갔다가 지쳐서 포기하고 돌아온 적도 있었다. 이제는 이사온 집에 적응이 됐겠지, 하다가도 혹시나 바퀴벌레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밤중에 구석구석 주방을 살피기도 한다. 바퀴벌레가 나올까 봐 걱정하는 것인지, 바퀴벌레가 나오던 집을 그리워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머리를 감으려고 할때면 물이 콸콸 나오는 것에 깜짝 놀라기도 한다.


3년 전에 처음 할머니댁으로 이사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그때도 울었고 적응이 안 돼 밖으로 맴돌았었다. 그때는 정말 앞으로 지내야 할 시간이 끝나지 않을 것처럼 막막하게 느꼈었는데,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이렇게 종로 외할머니댁에서의 인생이 끝나고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레임보다는 결국엔 뭐든지 끝이 오게 되는구나 하는, 너무 당연한 사실에 허탈감이 더 많은 것 같다. 앞으로도 한동안은 다시 적응의 시간을 가져야 하겠지. 이제 고등학생이고 3년 전보다는 철도 많이 들었다고 생각하니, 그 시간은 많이 줄어들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