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산과 일어나는 도시

2011. 12. 12. 08:24일기

<무너지는 산과 일어나는 도시>
2011.12.08.목요일

오늘은 1학년의 마지막 기말고사가 끝나는 날이다. 솔직히 이번 기말고사는 중학교 첫 1년을 그냥 날려버린 것 같은 기분에 착잡하고 숨이 막혀온다. 나는 한숨에 밀려 풀잎이와 함께 나도 모르게 숨이 탁 트이는 산을 오르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 학교생활을 어떻게 했던가? 나의 학교생활에 대한 환상은 깨어졌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진실을 학교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학교 공부가 때로는 진실을 외면하는 수단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삶에 대한 고민 없이 아무 생각 없이 구는 아이들에게 질렸다. 공부를 못해서 학교 이름에 먹칠을 하는 학생은 필요 없다고 당당하게 훈화하시는 교장 선생님과 삶이나 사회 문제에 관심을 두면 학생은 공부해야지 그런 거 알아서 뭐하냐는 냉랭한 분위기의 그런 수업을 나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폭력적이고 예의 없는 아이들 때문에 화병이 생겨서 병원에 입원하신 담임 선생님께 아이들은 아직도 미안해할 줄 모르고, 공부를 잘하고 생각이 깊을 것 같은 애들인데도, 최근에 당선된 박원순 서울 시장을 무조건 빨갱이라고 놀리는 행태를 받아들이기 역겹다.

나는 지난 주말에 책 사러 교보문고에 갔다가 광화문에서 촛불시위 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리고 시위하는 사람들의 세 배 정도 큰 규모의 경찰들이, 지금 당장 전쟁에 나갈 기세처럼 딱딱하고 검은 진압봉을 허리춤에 두르고, 거대한 방패를 차고 시위하는 사람들을 원천봉쇄하고 있었다. 거리를 걷는 시민들은 그 안에 갇혀 몇시간 동안이나 빠져나오지 못하고 난리였는데, 나도 영우와 그 안에 껴 있었던 것이다. 영우는 겁에 질려 울고불고, 나는 화가 나서 항의하고 그 현장을 동영상으로 찍으려 했는데, 경찰은 험악하게 "찍지 마!"를 연발하고! 나는 갑자기 그 생각이 나, 씩씩거리며 교복 윗도리를 벗어 던진 채, 가방 안에 꾸역꾸역 쑤셔 넣었다. 국민의 민심을 무력으로 진압하려 하다니, 무슨 동물들이 집단 탈출한 것도 아니고! 주변은 인권 탄압으로 넘쳐난다! 나는 흰색 티 한 장에 잠바 하나만 걸친 채로 산 쪽으로 걷기 시작하였다.

산까지 가는 길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 많은 동네를 지나가야 한다는 말을 들어서 조금 무서웠는데, 전봇대에 치킨 전단지가 붙어 있는 것을 보고 마음이 놓였다. 산쪽으로 가면 갈수록 사람은 점점 보이지 않게 되었고, 마침내 정말로 서울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울창한 나무와 웅장하게 깎인 봉우리 하나에 도착하게 되었다. 올라오는 길은 그다지 험하지 않았고, 내 동생도 학교에서 소풍을 온 적이 있었던 여기는 인왕산이다!

숲이 우거진 산속에 군데군데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풍경은 그림 같았다. 산비탈에서는 청설모가 쪼르르 내달리고 있고, 겨울이라 산바람이 살을 에는 듯이 파고들었지만, 한창 울화가 나 씩씩거리며 산에 올랐던 나에게는 시원하게 느껴져서, 바람을 막는 잠바의 지퍼까지 풀어헤쳤다. "우와, 경치 좋다! 너, 이런 데를 어떻게 알아?", "내가 여기서만 14년을 살았잖아!" 풀잎이와 나는 인왕산 속을 거닐었다. 양주와 고양시에 살 때만 해도 주변에 산과 숲이 많아서 학교 끝나면 언제나 들쑤시고 다녔었는데, 중심지에 와서는 산속의 맑은 공기를 마셔 볼 기회가 많지 않아 그리워했었지, 그래, 힘든 길이어도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산 중턱에서 갑자기 철문이 나타나더니 그 앞에 <주의, 공사 중 돌아가시오!> 라고 쓰여있는 표지판이 있었다. 우리는 옆으로 살짝 빠져나가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았다. 안에 있는 풍경은 지금까지 우리가 본 풍경과는 아주 대조적이었다. 울창한 소나무 숲은 없고 흙먼지 가득한 사막 같은 풍경만이 존재했다. 산은 운석이라도 맞은 것처럼 처참하게 파헤쳐져 있었고, 그 한가운데에는 무시무시하게 커다란 포크레인 한대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딱 한그루 마지막 남은 소나무가 외롭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는 입을 헤~ 벌리며 말했다. "예쁘다!", "뭐가?", "저 소나무 말이야, 혼자 남은 거!", "응, 정말 그러네!" 홀로 남은 소나무는 사막같이 벗겨진 땅 위에 홀로 선 모습이 아름다웠고, 꼭 조선 시대의 장승업이 그린 그림처럼 굴곡과 기품이 넘쳤다. 하지만 포크레인과 마구 파헤친 산을 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저 예쁜 나무도 없어져 버릴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다. 풀잎이는 말했다. "아, 이런 이 자리에 들어선 건물을 보고 사람들이 할 말을 알겠어! 오호호, 어머나, 건물이 정말 예쁘게 지어졌군요! 하지만, 정작 원래 있었던 자연이 더 아름다웠는지는 생각 못하겠지!"

좀 더 위로 올라가 보니 공사 현장 너머로 온 서울이 발아래 다 보였다. 바로 앞에 배화여대부터 저 끝에 남산타워까지 끝도 없이 넓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풀잎아, 언젠가 옛날에는 저기 보이는 저 도시들도 모두 평야나 숲이었겠지?", "응, 당연하지!"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잠시 넋을 놓고 서울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바위에 앉아, 인간이 자연과 함께 공존하며 살 수는 없는 걸까? 왜 권력을 가진 자들은 겸손하지 못하고 힘없는 자를 무시하는 걸까? 고민에 잠겼다. 그러다가 '내가 지금 당장 이 세상의 모든 부조리를 고칠 수는 없어도, 내 눈앞에 보이는 쓰레기 정도는 처리할 수 있지 않은가?'라고 생각했고, 내 눈은 비록 시력이 나빠 안경을 쓰고 있었지만, 쓰레기를 찾는 데에 모든 초점을 곤두세웠다.

바로 앞에 반쯤 피다 버린 담배꽁초가 포착되었다. 나는 담배꽁초를 들고 풀잎이에게 보여주면서 "하아, 이거 참! 풀잎아, 이것 봐, 여기까지 와서 이런 짓이나 해대고~!" 한숨을 쉬었다. 풀잎이는 "대단하네, 우주에서도 피우겠어!" 했다. 나는 담배꽁초를 어디에 버려야 할지 두리번거렸다. 산에는 쓰레기통이 없었고, 내가 평소에 환경을 아주 아끼고 실천했던 사람이 아니라서 쓰레기봉투를 휴대하고 산에 올라온 것도 아니었다. 잠바 주머니에 넣자니 재가 주머니를 더럽힐 것 같고, 가방에 넣었다가는 책과 꽁초가 뒤섞여서 엉망이 될 것 같아 결국은 실내화 주머니의 불룩 나온 또 다른 주머니에 넣었다. 나와 풀잎이는 담배꽁초를 비롯한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다.

쓰레기는 주워도 주워도 계속 나와 그것을 줍느라 우리는 제법 산 깊숙한 곳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거기는 더 가관이었다. 담배꽁초는 봐줄 만 한 것이었다. 깨진 소주병과 도자기 그릇에다가 무슨 뼈인지 모를 뼛조각까지 널브러져 있었다! '아니, 맙소사! 이런 짓은 도대체 누가 하는 거지? 쓰레기는 싸서 자기 집에서 버려야지!' 그리고 공포심도 들었다. 그렇게 내 실내화 주머니는 담배꽁초 여러 개와 깨진 소주병, 여러 조각의 자기 그릇과 2개의 찝찝한 뼛조각으로 그득히 찼다. 우리가 손을 댈 수 없는 가시덤불 속에 담뱃값이 있었는데, 그 바로 옆에 새 둥지에서 메추리알 같은 뽀얀 알이 있는 걸 보고 풀잎이와 나는 경악하였다. 우리는 산에서 내려오며 오늘 그래도 나와 풀잎이 덕분에 약간은 기분이 가벼워졌을 산을 생각했다. 내 속은 조금 뿌듯한데, 아직 내 실내화 주머니 속은 비우지 않아 담배꽁초, 이름 모를 뼈, 오물로 빵빵하게 가득 차 있다! 엄마가 발견하는 날에는 해명하는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