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2.16 토요일
아침부터 영우는 마음이 들떠 있었다. 잘 씻지도 않던 녀석이 엄마를 졸라 머리도 감고, 양치질까지 하였다. 그리고는 거울 앞에서 드라이도 하고, 속옷도 갈아입고, 나도 어서 깨끗하게 꾸미라고 강요(?)를 했다.
영우가 1년 동안 다녔던 미술학원에서 오늘 전시회가 있는 날인데, 나는 영우가 전시회에 그렇게 신경을 쓰는 것을 보고 놀랐다. "형아, 오늘만큼은 싸우지 말고 잘해보자! 그리구 전시회 가서는 점잖게 해야 한다. 꼭 알았지?"
누가 형인지 모르겠다. 영우가 그토록 설레어 하는 걸 보니, 내가 7살 때, 미술 학원 졸업을 앞두고 전시회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가을에 전시회를 했었는데, 영우는 졸업 직전에 하게 되는구나. 우리는 유치원을 다닌 적이 없고 미술학원만 꾸준히 다녔기에, 전시회에 대한 추억과 자부심이 둘 다 남다른 것 같다.
나는 영우에게 축하 꽃다발을 만들어주고 싶어 서랍 속에 있는 색종이를 모두 꺼내놓고 만지작거리는데, 영우가 만들지 말라고 하며 이랬다. "형, 학원에 가면 꽃 많아. 선생님하고 애들하고 많이 만들었어. 가면 벽하고 문에 꽃이 다 다닥다닥 붙어 있어!" 그래서 전시회 다 보고 나오는 길에 학원 앞에 있는 빵집에서 도너츠를 한 개 사 줘야지 마음먹고 집을 나섰다.
엄마도 아빠도 준비를 마치고 함께 공원 길을 걸어갈 때, 우리는 너무 신이 나서 땅이 꺼질 듯이 팔짝팔짝 발을 구르며 "가자! 영우의 그림 세상으로!" 하고 소리 질렀다. 그러면서도 영우는 가족들에게 자꾸 뭘 당부하느라고 바빴다. "엄마, 내 그림만 잘났다 그러면 안 돼요. 친구들도 잘 그렸구나 해야 해!", "아빠, 사진만 찍지 말고 이렇게 웃어가면서 해요.", "형아, 과자 너무 많이 먹지 마!"
그런데 바람이 너무 거칠게 불어서 우리 가족의 머리카락이 모두 바람을 타고 하늘로 솟아오르듯이 날렸다. 영우랑 나는 더욱 신이 나서 머리를 마구 흔들었고, 엄마는 "아이구, 스타일 다 구겨지네!" 하면서 머리카락을 잡아 내리셨다. 아빠는 뭔 날씨가 이렇게 사납냐며 우리 감기걸리겠다고 중얼거리셨다. 공원 언덕을 올라갈 땐, 바람이 절정에 달해서 모두가 외투깃를 두 손으로 꽉 잡고 버티며 걸어야 했다.
전시회 가는 길은 폭풍의 언덕 같았다. 폭풍의 언덕을 뚫고 도착한 학원 앞에서 우리는 잠시 "후~" 하고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씩 웃었다. 왜냐하면, 모두 똑같이 코와 귀가 새빨갛고, 머리가 부서진 까치집처럼 주저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추워서 체면이고 뭐고 다 버리고, 따뜻하고 예쁜 그림들과 선생님들이 반겨 주시는 동화 세상 같은 전시회장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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