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합창

2011. 7. 16. 09:00일기

<어설픈 합창>
2011.07.15 금요일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우리 1학년 4반은 배화 여자중학교 강당으로 모여 <밝고 맑은 노래 부르기 대회>에 나갔다. "아아아아~!" 소리가 한데 모여, 꼭 눈의 결정을 이루는 것처럼 아름다운 소리가 내 귀를 가볍게 울렸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와 우리 반 아이들의 사기는 점점 떨어졌다.
 
담임 선생님께서 음악 선생님이라는 이유로 학교 대회와 지역 예선도 걸치지 않고, 1주일간 연습해서 나가게 된 대회였다. 그런데 아이들은 합창대회에 나가기 싫어했고, 선생님께 "왜 우리 의사는 물어보지 않으셨어요?"라고 항의하는 아이도 있었다. 대회도 얼마 안 남아 연습을 빼먹는 아이들도 많았고, 남은 아이들도 열심히 연습하지 않았다.

그래서 사실 선생님도, 아이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 꼴찌인 것은 당연하고, 망신만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것을 말이다. 나는 그래도 1주일이지만, '무언가 만화처럼 기적 같은 게 일어나서 우승이라도 한다면?' 하는 상상을 하며 대회장에 들어섰다. 하지만, 배화여중 강당에 와보니 우리 반과 다른 학교의 수준 차이를 온몸으로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합창 대회는 청운 중학교, 장충 중학교, 배화 여자중학교, 성심 여자중학교, 금호 여자중학교! 이렇게 5팀이 출전하게 되었다.

다른 학교의 아이들은 어쩌면 합창을 그렇게 잘하는지, 옥구슬 굴러가는 소리가 나고,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하나 되어 강당 안을 웅장하게 웅웅~ 울렸다. 반면에 우리 반은 '아파트 마을'이라는 노래를 불렀는데, 이 노래가 어떠냐면 '부엌 위에 부엌 있고, 부엌 위에 부엌 있는 아파트, 아파트 마을, 아파트 마을'이라는 단순한 가사가 반복되는데다가, 가사의 반 정도가 '랄라라랄~'이란 후렴이 지겹게 이어지는 노래다. 리허설을 할 때는 우리가 끝에서 2번째로 했는데, 앞 팀들이 <인당수>, <최진사댁 셋째딸> 등 으리으리하고 웅장한 노래를 잘들 소화해내었다.

우리는 다른 학교에 비하면 어린이집 재롱 잔치 수준이라 모두 기가 죽은 듯 고개를 숙이고 있거나, 아예 체념한 듯 수다를 떠는 아이도 있었다. 무대에 올라가기 직전 나는 맨 끝줄이라, 앞줄 아이들이 무대에 올라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조금 전에 땅에 꽂혀 있던 막대들처럼 착착 질서정연했던 형아, 누나들과는 달리, 우리는 어린이집에서 급식 먹던 아이들이 재롱 발표회 하러 나온 것처럼, 줄도 안 맞고 제각기 어리버리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첫 소절부터 알토 부분을 맡은 아이들이 가사를 모두 까먹고 말았다.

알토 파트가 선창하면 소프라노가 코러스를 넣어야 하는데, 마이크에서 멀리 떨어진 키 작은 아이 한 명만이 안쓰럽게 노래를 불러 개미만 하게 들렸다. 나는 소프라노 파트라서 눈코입을 최대한 위로 올리고, 올라가지 않는 음을 억지로 올리며, 멋진 오케스트라 반주에 맞춰 합창한다는 상상에 집중했다. 머리카락에서는 땀이 흘러 눈에 들어가고 있었다. 중간 중간에도 대부분 가사를 까먹어 소리가 안 들릴 때도 있었고, 고개를 까딱까딱하기로 약속한 부분에서는 대부분이 잊고 안 하거나 반대 방향으로 우왕좌왕하였다. 만약에 이게 방송이었다면, 아마 우리 반은 편집은커녕 나가지도 못했을 상황이었다.

리허설을 마치고 무대를 내려가는데, 장비를 담당하는 한 여학생이 똑부러지게 말했다. "쟤네, 되게 못 한다~!" 뒤늦게 공연을 보시러 온 학부모들도 "아휴, 정말 안 되겠다!" 하고 난처해하셨다. 우리 반은 가장 마지막 순서라서, 앞서 나온 4팀을 보며 위축이 되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꼭 무언가 위에서 눌러 짜부라진 것 같은 우리를, 그래도 학부모님들은 "기죽지 말고 큰소리로! 자신 있게 해야 한다! 큰소리로!" 응원해주셨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가까워져 오고 아이들은 예민해져, 작은 이탈에도 "줄 똑바로 서라고~!" 하며 큰소리로 신경질을 내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무대에 올라갔는데, 아이들의 신경이 날카로워서인지 앞에 나온 팀들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리허설 때보다는 훨씬 줄을 잘 맞추어 섰다. "랄랄라랄라, 랄랄라라라~~" 앞 소절을 부를 때는 음이 여러 갈래로 갈라졌다. 이미 변성기가 온 아이와 아직 변성기가 오지 않은 아이의 목소리가 엉켜서 그렇게 된 것 같았다. 그래도 리허설 때보다 훨씬 나아진 모습에 아이들은 자신감을 찾고 노래도 크게 불렀지만, 중간에 피아노를 맡은 경진이가 너무 떨려 피아노를 멈춘 것 말고는 평소보다 훨씬 나았다.

중간에 몇몇 아이들이 가사를 몰라 끝난 줄 알고 노래를 안 부르는데, 나하고 몇 명만 '끝난 게 아니야!'하고 마음속으로 소리 지르며 크게 죽어라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공연이 끝난 후에 터진 박수는 그 어느 때보다 컸다. 이보다 더한 동정의 박수가 있을까? 아마 대부분 다 선배들이라 1학년 후배에 대한 측은한 마음이 컸나 보다. 결국, 우리반은 예상대로 꼴찌를 하였다. 하지만, 그래도 다섯 팀이라 꼴찌에게 돌아가는 동상을 받고, 부모님들께서 주시는 간식을 먹고 만족하여 돌아갔다. 이번 합창대회는 그나마 우리 반이 무대에 선 경험을 했고, 좋은 음악을 감상하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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