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시는 목사님

2011. 1. 31. 08:50일기

<춤추시는 목사님>
2010.01.29 토요일

오늘은 아빠와 친한 김 목사님의 아들이 장가를 가는 날이다. 김 목사님은 지난번 용산참사 현장에서 성탄절 전야 예배를 같이 드리기도 했었고, 시청 앞에서 단식농성을 하실 때 만나뵌 적도 있었다. 내 기억 속에 목사님은 정의를 위해 기도하거나 투쟁하는 모습이 많이 그려져 있어서, 정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으로 남겨져 있다.

아빠, 엄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참되고 정의로운 목사님의 아드님이 결혼하시는 자리에 가게 되었다고 들떴고, 나는 오랜만에 결혼식에 가보고 맛난 뷔페를 먹을 생각하니 마구 들떴다. 출발하기 전 우리 가족은 꼭 설날에 할아버지 댁에 가는 것처럼 분주했다.

나는 삼촌과 할머니께 "잘 다녀오겠습니다! 좋은 구경 많이 하고, 많이 먹고 올게요!" 하였고, 삼촌은 우스갯소리로 "그래, 잘 다녀와라! 혹시 가능하다면 뷔페 음식 좀 싸가지고 오고!" 하셨다. 나도 웃으면서 "네~ 삼촌! 할 수 있다면요!" 대답하였다. 날씨는 매서웠지만, 햇빛으로 온 세상이 보석같이 빛났다. 나는 결혼식장 하면 성처럼 웅장한 건물이 떠오른다. 지금껏 봐온 모든 결혼식장의 겉모습이 그랬으니까!

옛날에 살던 양주에서도 조금만 시내로 나가면, 으리으리하게 크고 리무진도 잔뜩 있는 <노블레스>라는 예식장이 있었고, 몇 년 전 설날에 대구에 내려갔다가 엄마, 아빠가 결혼했다고 한 예식장의 모습도 상당히 크고 세련됐기 때문이었다. 어렸을 땐 결혼식에 몇 번 가본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조느라 기억에 거의 남아 있는 것이 없다. 그래서 이번이 맨정신에서 제대로 보는 진짜 결혼식이라고나 할까? 기독교 연합 회관 건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바로 목사님과 사모님이 서 계셨다.

목사님 부부는 신랑의 부모님 같지 않고, 늦은 나이에 결혼하는 신랑, 신부처럼 옷을 곱게 입으셨다. 나는 처음에 엄마랑 맨 뒷자리에 앉았다가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중간쯤 자리에 아무 데나 가 앉았다. 점점 하객들이 밀려들어 오고, 사람들이 연단 앞까지 하얀색 예쁜 카펫을 놓았고, "아아, 마이크 테스트~ 마이크 테스트!" 하며 사회를 보는 아저씨의 나직한 목소리도 들려왔다. 드디어 조명이 어두워지고 사회자 아저씨께서 결혼식에 오신 하객들에게 감사의 인사말을 몇 마디 한 뒤에, 내가 기다리던 "신랑, 신부 입장~!"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꼭 영화에서처럼 '딴, 딴딴딴 딴, 딴따다!' 하는 음악이 퍼지고, 신랑과 신부는 서로 팔짱을 끼고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갔다. 내가 앉은 자리만큼 가까이 왔을 때 보니, 신랑, 신부의 얼굴에서 긴장감과 기쁨이 교차하는 신비한 감정이 느껴졌다. 둘 다 얼굴은 살짝 웃은 채로 있었지만, 땀이 조금 흐르고 있었고, 발이나 얼굴도 떨리는 듯하였다. 나는 내가 미래에 결혼해서 행진할 때를 상상해 보았다. 그러니 나도 따라 떨렸다. '이제 내 인생이 크게 한번 변하는구나! 행복하게 잘 살아야지!

어쩌면 힘든 일이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때마다 나와 내 아내가 같이 힘을 모아 헤쳐나가면 잘 될 꺼야!' 하는 그럴싸한 생각이 밀려왔다. 그리고 사회를 볼 사람과 또 주례해줄 사람은 누구일까? 사회는 친한 친구에게 부탁하고 싶고, 주례는 된다면 김 목사님에게 아니면, 음... 내가 주례 문제를 고민하고 있을 때, 결혼식 주례사가 시작되었다. 나는 영화에서처럼 간단한 서약만 하고 반지 끼워주고 키스하면, 음악이 울리며 결혼식이 끝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훨씬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할아버지 주례 목사님의 말씀은 잘 들어보면 좋은 이야기지만, 목소리도 노골노골하고 나긋나긋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지루해져만 갔다. 그리고 내 앞에 앉은 아저씨는 무언가 술로 샤워를 한 듯한 냄새가 나서 고통스럽기도 하였다. 그렇게 어느샌가 주례가 끝났고, 각종 축하 공연들이 펼쳐졌고, 마지막으로 순서에 없던 아줌마들의 율동과 노래가 이어졌다. 축가를 부르는 아줌마들은 김 목사님 교회의 신도들이라고 했는데, 우리가 생각했던 교회의 분위기와 맞지 않게 톡톡 튀는 춤을 추며 흥겹게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신도들이 앞으로 내려와 목사님 손을 이끌어 춤을 추는 바람에, 목사님도 일어서서 덩실덩실 춤을 추셨다. 전혀 예상치 못했기에 목사님은 당황하면서도 즐겁게 춤을 추었고, 그걸 보는 하객들은 "오오~!" 웃고 난리가 났다. 신랑, 신부의 떨리고 따뜻한 노래도 이어졌다. 나는 식장을 나오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재밌고 매력적인 결혼식은 처음이었어!" 나는 뷔페에서 먹고 또 먹었다. 그리고 목사님에게 말하였다. "제가 태어나서 이렇게 맛있는 것이 많았던 결혼식은 처음이에요!" 목사님은 동글 동글 달콤하게 웃으시며 "허허허~ 고맙다. 맛있게 더 먹고 가렴!" 하며 식당 안을 죽~ 가리키셨다.

춤추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