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1.21 금요일
나는 양주시에 사는 우리 반 친구, 지호네 집에서 2박 3일간 자고 왔다. 컴퓨터를 켜고 화면을 보고 키보드를 두드리니 기분이 미묘하다. 아주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기분이 들어서다. 나는 먼저 지호 어머니께 좀 미안한 생각이 든다.
하루도 아니고 이틀이나 지호 집에 묵으면서, 꼬박꼬박 밥을 얻어먹었으니, 내가 얼마나 먹성이 좋은가? 염치없지만, 나는 집 나온 아이같이 끼니때마다 밥을 눈 깜짝할 사이에 먹어치웠다. 지호 집에서 먹은 밥은 또 얼마나 맛있었는지!
오늘 밤은 지호 생각이 나서 흐뭇해진다. 왜냐하면, 그동안 내가 몰랐던 지호의 성격과 장점을 많이 알고 왔기 때문이다. 나는 지호 옆에서 보고 느꼈던 일들을 생생하게 그림 그리듯 떠올려본다. 지호네 집에서 잔 첫 번째 아침은 갑자기 주위가 환해졌다. 누구 하나 깨우는 사람은 없었지만, 어제 지호를 따라 오랜만에 일찍 자서 금방 개운하게 깰 수 있었다. 옆을 보니 지호도 누워 있는 채로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었다. 나는 "안녕, 잘 잤니?" 하였고, 지호는 "응~ 너도!" 대답하였다.
우리는 일어나서 지호 어머니께서 차려주신 근사한 아침을 먹으며 하루를 시작하였다. "우에에이~!" 갑작스러운 소리에 나는 깜짝 놀랐다. 그러나 곧 지호에게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 여동생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냈다. 지호 여동생은 대단한 개구쟁이다. 만날 지호 품으로 달려들어 "우에에히히히~!" 괴상한 소리를 지르고, 오빠가 친구랑 카드 놀이를 하려 하면, 카드를 흐트러뜨리며 놀아달라 떼를 쓴다. 으~ 나 같으면 하루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나는 여동생이 없어서 지호 동생의 장난이 당황스러웠고, 그나마 동생이 함께 카드 놀이를 할 수 있는 남자인 게 다행이야 생각했다. 그런데 지호는 목소리 한번 높이지 않고, 언제나 동생에게 부드럽게 대해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엄마가 봐주지 않을 때는 엄마의 역할을 대신 해주었다. 나는 동생이 책을 읽을 때 방해하는 것을 제일 싫어해서 조금이라도 동생이 걸리적거리면, 불쾌한 표정을 짓고 방에서 나가라고 한다. 그러나 지호는 동생이 떼를 쓰는 소리에 그렇게 재미있게 읽던 <신과 함께> 책도 내려놓고, 동생을 돌보아주러 가는 것이다! 지호가 꼭 초인간처럼 보이는 순간이었다.
아침을 먹고 지호는 무엇을 하려는지, 옷을 입고 나갈 준비를 하기 시작하였다. "상우야, 너도 준비하렴!", "어디 가는데?", " 동생 유치원 버스 데려다 줘야 해!" 나는 문득 나와 영우가 어릴 때 미술 학원 다닐 적이 떠올랐다. 그때는 엄마가 나와 영우를 버스 타는 곳까지 데려다 주었었지. 내가 초등학교 입학하고 나서도, 영우 버스 태워주는 일은 아무리 바빠도 늘 엄마가 하셨다. 그런데 지호가 동생 데려다 주는 일을 엄마 대신해주는 것을 보니, 믿음직하고 대견스러워 보였다.
사실 지호가 학교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 그냥 어른스럽기보다는 잘 놀고 명랑한 개구쟁이라고 생각했는데, 지호의 행동을 옆에서 보니 내가 부끄러워졌다. 무사히 지호 동생을 유치원 버스에 태우고 나서, 우리는 마을버스를 타고 자이단지에 가서 PC방에 들어가 신나게 축구게임을 즐겼다. 그런데 시간을 본 지호가 황급히 이제 빨리 돌아가야 한다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아니, 왜? 엄마가 부르시니?" 하고 물었다. 지호의 대답은 "아니, 이제 동생이 올 시간이 다됐어!"였다. 나는 놀랐다. 지금까지 내가 보아온 어떤 아이도 이렇게 동생을 아빠처럼 대해 준 아이는 없었기 때문이다.
자기의 시간을 쪼개가면서 동생을 돌보는 지호에게선, 분명 훌륭한 아빠의 자질과 깊이가 느껴졌다. 게다가 동생과 이렇게 사이좋게 지내니, 지호 엄마는 화나거나 속상할 일도 없을 것이 아닌가? 나는 지호의 행동을 보면서 영우와 엄마에게 한없이 미안하였다. 또 앞으로는 내 생각만 고집하지 말고 조금 더 부드럽게 말하고, 배려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마지막 날의 아침이 밝았다. 그때, 지호네 엄마가 지호에게 "지호야, 상우한테 준다고 했던 건?" 하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 말씀이 귀로 쏙 빨려들어 왔다.
지호는 말보다 먼저 몸을 움직여, 지갑에서 뭘 꺼내며 "아~ 그거!" 하였다. 그리고 지호는 지갑 안에서 무언가 책갈피 같은 것을 꺼내어 나에게 내밀었다. 바로 행운의 네 잎 클로버를 잘 말려서 코팅한 것이었다! 지호는 "행운의 부적이니까 잘 가지고 다녀! 우리 반 친구들 것도 다 만들었다! 너한테 제일 처음 주는 거야!" 하였다. 나는 감동을 하고 '내가 얼마나 행운아였던가!' 하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이렇게 좋은 친구를 가졌으며, 이 선물이 지금껏 친구에게 받아본 어떤 선물보다도 마음에 들었다! 나는 오늘부터 내 옆에 지호가 준 행운의 네 잎 클로버 부적을 놓고 잠을 청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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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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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우
그리고르기님, 안녕하세요?
제가 방학생활을 열심히 하느라(?) 댓글이 늦어졌네요.
그 후배님은 정서가 아주 풍부하신분인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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