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갔다 오는 길

2010. 12. 29. 09:00일기

<병원 갔다 오는 길>
2010.12.27일 월요일

"띵동! 권상우, 권상우 손님께선 들어와 주십시오!" 하고, 내 차례가 되었음을 알리는 소리가 작은 전광판에서 작게 흘러나왔다. 아파서 며칠을 씻지 않은 나는 꼬재재한 모습으로 제1진료실로 들어갔다.

그 안에는 눈빛은 조금 날카로우며 얼굴이 동그란 여의사 선생님께서 앉아 계셨다. 의사 선생님은 꼭 만화영화에서 본 듯한 분위기였고, 왠지 커피를 홀짝이며 마실 것 같았다.

나의 열감기는 3일 전인가? 친구들과 외박을 하며 진탕 놀고 돌아온 다음 날부터 시작되었다. 친구들과 밤을 새우고 놀아서 집으로 돌아온 나는 오후부터 저녁까지 잠을 쓰러진 듯이 잤다. 그런데 일어나니 몸이 엄청 무겁고 머리가 꼭 야구방망이로 얻어맞은 것 같이 아프고 뜨거웠다. 그리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꼭 기름을 발라 튀기는 것처럼 뜨겁게 열이 나는데, 정작 너무 추워서 이불을 두 겹이나 두르고서도 이빨을 딱딱 부딪치며 떨었다.

이런 증상이 3일간 계속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그냥 가끔가다 잔기침을 조금 내는 정도? 하지만, 영우가 나에게 옮아서 열이 떨어지지 않고 머리가 아프다고 울면서 밤잠을 설친 뒤, 할아버지께서 이제 걸을 수 있으니 제발 병원에 가라고 하셨다. 우리는 엄마를 따라 동네 병원으로 출발했다. 그렇게 활발하던 영우가 걸음도 시름시름 걷고 죽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것을 보니 미안했다. 어려서 나보다 더 심하게 아픈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집을 나오는 순간부터 우리는 장난을 쳤다. 이웃집 보일러에서 나오는 연기를 김이라고 쐬었다. 마침 흰 눈이 흩뿌리듯 내려와 신이 났다. 나는 골목길마다 언 곳을 발로 밟으며, 어디 눈 때문에 사박사박 소리 나는 데가 없나 찾아다녔다. 영우는 흰 눈을 맞으려고 입을 벌리고 춤추듯이 뛰어다녔다. 앞서 걷던 엄마가 "으이구~ 이게 아픈 녀석들이야?" 하면서 우리를 재촉하셨다.

자, 다시 병원으로 돌아오자! 의사선생님께서 나에게 "음, 어떻게 어디가 아파요?" 하고 물으셨다. 나는 "어제까지는 열도 엄청나고, 꼭 얻어맞은 것처럼 아팠었는데, 집에서 많이 쉬니까 오늘 아픈 건 다 없어지고, 열도 없고 그냥 잔기침만 가끔 나와요!" 하고 자랑스럽게 말하였다. 의사 선생님은 "아, 하세요!" 하셨다. 내 입에 작은 손전등과 넓적한 은막대기를 집어넣으려고 하셔서, 나는 "아~" 하고 입을 벌렸다. 선생님은 은막대기로 혀를 누르고 손전등으로 빛을 비추어, 꼭 현미경을 보는 것처럼 내 입안을 관찰하셨다.

입안 진료가 끝나자 청진기로 배와 등을 짚어보셨다. 의사 선생님은 '으음, 알겠군!' 하는 듯이 윗입술을 깨물고 눈을 가늘게 뜨시며, 청진기를 들어 귀에 꼽고 "옷 올리세요!" 하고 똑 부러지게 말씀하셨다. 나는 며칠 씻지를 않아 좀 부끄러웠다. 나는 복식호흡을 하는 임산부처럼 "후, 하! 후, 하!" 거리며 원시인이 노래하듯이 숨을 쉬었다. 그러는 사이, 창밖에는 더 많이 흰 눈이 쏟아지고 있었다.

선생님은 날카롭고 호리호리한 목소리로 "요즘 아주 유행하는 열감기로군요! 약은 3일치 지어 드리죠!" 하셨다. "그럼 선생님, 주사는 안 맞아도 되나요?", "그럼요! 안 맞아도 돼요!" 선생님은 영우도 나랑 같은 증세라고 하면서 잘 먹으라고 하셨다. 우리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흰 눈이 꽃잎처럼 내려와서 '빨리 낳아서 우리와 함께 놀자~!' 하고 이야기를 거는 것 같았다. 엄마는 시장에 들러 순대국을 사주셨다. 아직 약을 먹지는 않았지만, 따뜻한 순대국을 영우가 남긴 것까지 마셨더니, 배도 부르고 입도 행복하며 병도 없어져 버린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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