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2.24 금요일
나는 어제 방학식을 했고 원영이네 집에서 자고 왔다. 밤사이에 부쩍 추워진 날씨 때문에, 오들오들 떨면서 지하철을 탔다. 바깥세상은 가게마다 크리스마스트리와 장식이 반짝거렸다.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브구나!' 나는 크리스마스가 오기 며칠 전부터 기도한 것이 있다.
오늘만큼은 아빠와 함께 저녁을 먹을 수 있기를! 아빠는 요즘 바쁘셔서 밤에는 얼굴을 볼 수가 없고, 아침엔 내가 일찍 나와 식사를 같이한 적이 없다. 그런데 내 소원이 이루어져 아빠가 크리스마스 이브엔 저녁 식사를 함께 하기로 약속하신 것이다!
할머니는 저녁 미사에 가시고, 특별히 엄마와 아빠와 영우가 장을 보러 가는 동안 나는 잠이 들었다. "상우야! 내려와라! 할머니 오셨다! 같이 저녁 먹어야지!" 엄마가 나를 부르셨다. 나는 살짝 잠에서 덜 깨어났지만, 얼굴을 흔들어서 잠을 훌훌 털어버리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벌써 할머니께서는 성당에 다녀오셔서 식탁 앞에 막 앉으시려 하고, 먹음직스런 훈제 치킨이 식탁 위에 놓여 있었다. 나는 "우와!" 소리를 질렀다.
엄마, 아빠는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을 위해 할인마트에서 훈제 치킨과 치즈 케이크를 사오셨고, 할머니께서도 성당에서 맛있는 떡이랑 사탕, 수제 과자를 잔뜩 받아 오셔서 정말 근사한 크리스마스 저녁 식탁이 차려지고 있었다. 꼭 영화에서 보던 것 같이 말이다! 단 칠면조 대신에 훈제 치킨이 있다는 것 빼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칠면조를 먹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할아버지께서는 감기 기운이 있으시다고 식탁 앞에 앉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셨다.
나는 식사하기 전에 성탄절을 기념하여 대표로 기도하였다. "하느님! 오늘 크리스마스 이브의 저녁 식사에 가족이란 이름으로 우리를 모일 수 있게 도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맛있는 음식을 내려주셔서 감사하고, 가족과 삶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그분의 가르침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겠습니다. 아멘!" 드디어 맛있는 저녁 식사가 시작되었다.
할머니께서 가져온 과자는 바삭거리고 달콤한 게, 크리스마스 영혼이 담긴 듯 정말 다른 과자와는 차원이 달랐다. 엄마, 아빠가 사오신 치즈 케이크도 부드럽고 촉촉하며 달콤했다. 모두 맛있지만 역시 하이라이트는 훈제 치킨이었다! 그런데 훈제치킨의 양이 조금 모자랐다. 훈제 치킨은 큼지막한 닭다리로 4조각이었다. 밤늦게 오실 삼촌 몫으로 한 조각을 접시에 덜어두니, 남은 조각은 딱 3조각뿐이었다. 치킨을 어떻게 나눌지 고민이 되었지만, 할머니는 구수하게 웃으시며 "아, 뭐 썰어서 먹으면 딱 되겠네!" 하셨다.
엄마는 칼로 조각을 나누시고, 영우는 닭다리 한 개를 잡고 뜯어먹었다. 영우는 "어우, 맛있어! 어우, 맛있어! 난 치킨을 먹는 게 소원이었다니깡~!" 하며 긴 속눈썹을 치켜들었다. 나는 아빠 옆에 앉아 나누어 먹었다. 그러나 사실 아빠는 먹는 시늉만 하고 들지 않으셨다. "아빠, 크게 한입 드세요!", "됐다, 너 많이 먹어라!", "아빠, 좀 드시라니까요!", "괞찬대두~ 너 많이 먹어!", "제발요~ 아빠, 아빠가 한입 크게 드시는 것이 저의 소원이에요!" 나는 목소리가 올라가고, 거의 울상이 되었다.
아빠는 그제야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입을 쩌억 벌려 크게 한입 찹찹~ 베어드셨다. 양은 적었지만, 맛은 최고였다! 보통 치킨과 달리 입에 착착 달라붙었다. 나는 그 맛을 느끼면서 천천히 씹으며 "내 생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에요!" 말하였다. 할머니는 껄껄껄~ 웃으시며 "넌, 어째 매일 먹는 것마다 제일 맛있다 그러냐?" 하셨다. 하긴 나는 조금만 맛있어도 아낌없이 찬사를 보내며 먹었지만, 이번엔 아빠와 먹는 치킨이라 더 특별했는지도 모르겠다. 꼭 하느님이 먹던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는 것 같아 기분이 황홀했다.
할머니와 엄마도 치킨을 조금 먹고, 아빠와 내 접시 앞으로 치킨을 건네셨다. 훈제 치킨은 곧 바닥이 나고 접시 안은 깨끗해졌다. "상우야, 모자라서 어떻게 하냐?" 아빠가 말씀하셨지만, 나는 만족한 표정으로 배를 문지르며 "오늘 저녁은 최고였어요!" 말하고서 입 주위를 쓰윽~ 핥았다. 나는 잠들기 전 산타 할아버지에게 간단한 편지를 써서 머리맡에 두고 잤다. 오늘은 소원대로 아빠와 저녁 식사를 했으니, 제게 선물을 주지 않으셔도 된다고! 그것은 진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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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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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b
안녕하세요
상우형 정말 좋은 크리스마스를 맞이했네요.
그런데요 하느님이 아니라 하나님인데요.
하느님은 세상에 잘못 알려진 것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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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과
상우아빠의 표정이 너무 기가 막히게 잘 표현했어요.
상우도 성당에 다니나요?
나는 작년에 영세를 받았어요.
세레명은 "모니카"에요.
상우 할머니같이 좋은 할머니가 되려고 성당에도 갑니다.
손자손녀를 위해서 기도해주는 할머니 자상하고 좋지요.
상우와 나의 공통점은 모든 음식이 맛이 있다는 겁니다.
맛이 없는 경우는 몸이 심하게 아팠을 때입니다.
물도 써서 못 마실 정도였거든요.
밥맛이 좋다는 것은 건강하다는 겁니다.^^
방학 알차게 보내세여., 많이 놀기도 하구요.^^-
상우
모과님, 멋진 세례명을 지니셨네요!
제 세례명은 알베르토입니다.
새해에는 모과님 더 건강하시고, 맛좋은 음식 많이 드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언뜻 다음 뷰에서 모과님께 놀라운 소식이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확인하러 가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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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것 만으로도 즐거울 듯 합니다~
형편이 된다면 구매를 하고 싶으나.. 그 형편이 문제군요ㅎㅎ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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