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공원에서 만난 가을

2010. 10. 14. 09:00일기

<호수공원에서 만난 가을>
2010.10.10 일요일

오늘은 일산에 있는 호수공원에 갔다. 나와 영우가 시험 준비 기간인데도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거리고 투닥투닥 다투니까, 엄마가 그 꼴을 못 보시겠다며 어디론가 가자고 하셨다. 엄마는 가을의 정취도 느끼고 야외에서 공부도 하자고 하셨다.

우리는 배가 고파 호수에 가까운 풀밭에서 돗자리를 펴고 앉아, 엄마가 싸온 맛있는 도시락을 먹기 시작했다. 주먹밥, 김밥, 할머니가 시골 산소에 갔다가 따오신 토실토실 익은 밤, 할아버지께서 사오신 호두과자, 사과, 참외, 엄마는 이렇게 많은 것을 싸서 오셨다.

우리는 먹이에 굶주렸던 다람쥐처럼 배가 터지도록 먹고, 주섬주섬 각자 배낭에서 공부할 것을 꺼내었다. 하지만, 공부를 얼마 시작한 지도 안 됐는데, 어느새 나는 자동으로 움직이는 바지를 입은 것처럼 일어나서, 운동화를 신고 풀밭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호수공원은 꼭 옛날에 우리 집에 걸려 있던 호수 그림 같았다. 파란 하늘에 주황빛 태양, 그리고 투명한 호수! 온갖 풀들이 사이좋게 엉켜 있고, 나무들이 시원한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아름다운 풍경!

옛날부터 가을은 천고마비의 계절이란 말이 있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찌는 계절이라는 뜻인데, 지금은 꼭 하늘이 영원히 내 손에 쥐어지지 않을 것 같이 아찔하게 높았다. 하지만, 그렇게 높은 하늘이 있어서 자꾸만 내 마음은 위로, 위로 저 하늘을 찌르게 올라가고 싶었다. '저 하늘을 향해 날아가면 얼마나 짜릿하고 신이 날까? 하늘로 폴짝 뛰어올라서 그대로 우주까지 가버리면 어떨까?'

나는 하늘을 나는 상상을 하며,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날듯이 뛰어다녔다. 풀밭에는 갈색의 바삭바삭한 낙엽들로 가득 차서, 걷기만 해도 바스락, 푸스락~ 소리가 났다. 그런데 신기한 건 주변에 나무들은 아직도 싱싱한 연초록색이다! 나는 호숫가로 가보았다. 호수를 둘러싼 난간 위에는, 날벌레들이 검은색 연기처럼 한자리에서 맴돌며 윙윙~ 꼬여 있었다.

나는 날벌레들을 손으로 휘휘 저어서 쫓아낸 후에, 난간에 매달려 유유히 경치를 구경하였다. 호수는 하나의 떨림도 없이 그냥 고요한 것이, 물결이 꼭 가볍게 떨어지는 아기 새의 깃털 같았다. 나는 호수의 공기를 크게 들이마셨다. 호수 근처인데도 매우 건조하고 차가워서 나의 폐에 서리가 서는 것 같았다. 그때, 바람이 불었다! 호숫가에 나무들은 머리카락을 부슬부슬 흔들며 '어이, 시원해~!' 하는 것 같았고, 바람에 맞추어 춤추듯 통통한 가지와 나뭇잎을 살살 흔들었다.

나는 바람을 안으며 두 팔을 벌리고 빙빙 돌았다. 어쩌면 내가 지금 밟고 있는 이 호수공원 자체가 한 폭의 그림이 아닐까? 나는 그림 속에 멋모르고 뛰어들었다가, 풍경에 취해서 나올 생각을 하지 못하는 아이겠지! 그렇게 미적근하고 따뜻한 햇살을 맞으면서 돗자리 위에 누워 하늘을 보니, 나는 지금까지도 마음과 뼛속이 갈색과 연초록이 섞인 가을빛으로 물들어 있다. 이제 아무리 추운 겨울이 와도, 그 풍성한 그림을 가슴에 묻어두고 풍성하게 살아야지!

호수공원에서 만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