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에 모인 가족

2010. 9. 25. 09:00일기

<추석에 모인 가족>
2010.09.21 화요일

나는 작지만 힘차게 말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저희 왔어요!", "어휴, 그랴~ 이제 오는 겨?" 할머니는 웃는 얼굴로 엘리베이터 앞에서 우리를 마중 나와 주셨다.

그 옆에는 "왔어요?" 하며 팔짱을 끼고 맞아주는 둘째 고모와, 뒤에서 지현이 누나와 수연이가 얼굴을 빼꼼히 내밀고서 가만히 인사하였고, 더 뒤에 집안에서는 할아버지께서 뒷짐을 지고 "왔냐?" 하시는 모습이 그림처럼 보였다.

할아버지 댁에 들어서자, 오랜만에 아파트의 탁 트인 넓은 마루가 보여 신이 났다. 우리는 할아버지, 할머니께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절을 하였다. 그렇게 우리 가족의 추석은 시작되었다. 할아버지는 소파에 앉아서 TV에 초점을 맞추셨다. 할아버지는 새로운 소식을 찾는 호기심 많은 어린이처럼, 리모컨을 돌리고 같은 자세로 몇 분이고 앉아계셨다.

할머니와 고모, 엄마는 부엌에 각각 싱크대에 서서 꼿꼿이 움직이지 않고, 손만 바쁘게 움직이며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다가 가끔 웃음을 터뜨리시고는 하였다. 지현이 누나와 수현이는, 수현이 방에서 불도 켜지 않고 컴퓨터로 무언가 보며 가끔가다 "와학학학~!" 웃었다. 나랑 영우는 식구들이 곳곳이 모인 장소를 맴돌며, 아무 방문이나 열어보다가 깜짝 놀랐다.

지현이 누나 침대에서, 아빠가 배짝 마른 모습으로 숨도 쉬지 않는 것처럼 누워서 주무셨기 때문이다. 하기는 서울에서 대구까지 쉬지 않고 운전을 하셨으니 피곤하셨을 것이다! 아빠를 빼곤 모두가 무언가 재미있게 하는듯 보였다. 하지만, 나는 왠지 쓸쓸했다. 넓은 집에 사람은 9명이었지만, 할아버지 댁은 워낙 조용한 분위기라 목소리가 큰사람도 없었고, 가족이 오랜만에 모였을 때처럼 복작복작 하지도 않았다.

꼭 그림 전시회에 와서, 여러 개의 그림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꼭 나밖에 없는 것처럼 조용했다. '나도 지금 할아버지 댁에서 이렇게 왠지 쓸쓸한 기분을 느끼는데, 여기서 인생의 많은 부분을 사셨던 할아버지, 할머니는 어떠셨을까? 어쩌면 이렇게 조용하고 큰 집 때문에, 그렇게 조용하고 말이 없는 분이 되신 것은 아닐까? 누군가 이 넓은 집에서 먼저 말을 걸어와 주시기를 기다리시는 것은 아닐까?'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께, 외할아버지가 꼭 전해주라고 하신 봉투를 보여 드렸다. 그것은 옛날에 내가 한겨레 신문에 인터뷰했던 기사와 영우가 전학 온 지 3일 만에 부회장이 된 임명장이었다. 나는 블로그 명함도 드렸다. 그리고 그동안 모르고 계셨던 블로그 자랑을 하였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놀란 얼굴로, 나와 엄마와 아빠가 번갈아 하는 설명을 가만히 들으셨다.

그러나 곧 할머니는 갑자기 "우와! 우리 새깽이들, 장하다~!" 하면서 눈시울이 붉어지셨다. 할아버지는 내가 나온 신문을 그 자리에서 끝까지 뚫어지게 읽어보시더니, 살짝 웃으면서 "잘했다야! 상우가 엄마를 닮았구나!" 하셨다. 나는 오늘 처음으로 할아버지가 편하게 웃는 것을 본 것 같다. 내가 크면 꼭 할아버지가 오늘처럼 웃는 날을 기억하고, 매일매일 웃으시게 해 드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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