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와 함께 고물상에!

Posted in 일기 // Posted at 2010/08/18 09:41
<할아버지와 함께 고물상에!>
2010.08.14 토요일

오늘은 이사하면서 버리게 된 상자와 옛날 책들을 지게에 담았다. 할아버지와 고물상에 가서 팔기로 한 것이다. 우선 책을 먼저 바퀴 달린 지게에 쌓아서 줄로 묶었다.

그런데 내가 실수로 힘을 너무 세게 쥔 나머지 책을 고정한 줄이 끊어져 버렸다. 할아버지는 재빠르게 끊어진 줄 매듭을 지어서 다시 고정하셨다. 고물상까지 가는 길은 힘들었다.

길에 높게 솟아 올라온 턱에 걸려 나는 몇 번을 넘어졌다. 와우마트 옆에 있던 재활용 센터는 생각했던 것과 달리, 꼭 대형 화물트럭 정비소처럼 문이 없고, 어둡고 연장들도 많고, 힘세 보이는 어른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게 눈에 띄었다. 하지만, <종로 재활용 센터>라고 쓰여있는 간판과 내 키보다 높게 쌓인 거대한 박스 더미들 때문에 재활용 센터라는 것을 알았다.

할아버지는 재활용 센터 앞에 이상하게 생긴 회갈색 쇠 발판에, "여기! 여기!" 하시며 손가락으로 가리키셨다. 나는 그 지게를 할아버지 말씀대로 쇠 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재활용 센터 안, 의자에 앉아계시던 아주머니께서 "아가, 거기서 내려와라!" 하셨다. 그러면서 재활용센터 오른쪽 벽에 붙어 있는 숫자판을 들여다보셨다. 나는 내가 지게를 올려놓은 갈색 쇠 판 위에 나도 올라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얼른 밖으로 물러났다.

'아하! 이것은 저울이구나!' 생각했다. 22kg! 전자 계기판에는 이렇게 나왔다. 아저씨는 "3,000원!" 하셨고, 아주머니는 "아니여~ 2,000원이지!" 하였다. 아저씨는 묵묵히 책을 지게에서 풀어 들고서는 책을 따로 쌓아놓는 구석에 "끙~!" 소리 내며 내려놓으셨다. 어릴 때 재미있게 읽었던 책도 많아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이제 책들이 재활용되어 새 생명을 얻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아저씨께서는 왼쪽 주머니를 뒤적거리시더니, 천 원짜리 지폐 돈 2장을 나에게 내밀었다. 나는 공손히 두 손으로 받아들고 잠시 내 손안에 돈을 구경해 보았다. 푸른색의 약간 너덜한 1,000원짜리 2개! 내가 가지고 싶었지만, 할아버지께서 고물상에 가자고 알려주시지 않았더라면, 내가 이 돈을 벌지도 못했을 거라는 생각에 할아버지께 "할아버지, 여기요!" 하고 돈을 내밀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아녀, 너 가져." 하시며 고개를 저으셨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고마웠다. 사실 나는 지금까지 할아버지가 뇌경색에 걸려 무뚝뚝하게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고, 말도 잘 안 하셔서 속으로는 할아버지 대하는 마음이 불편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할아버지는 뇌경색이라는 끔찍한 병으로 머리도 아프실 테고, 그러니 당연히 표정을 찡그리실 수밖에! 할아버지는 수십 년을 조용하게 붓글씨에 전념하며 사셨으니까, 선비같이 조용한 것도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나는 그날 2번 더 고물상에 가서 돈을 받아 6,500원이라는 큰돈을 벌었다. 내가 일을 해서, 누군가가 내게 돈을 건네는 느낌은 처음이라 흥분되고 짜릿하였다. 날씨는 덥고 온몸은 땀으로 젖고 중간마다 넘어져서 짜증이 나기도 하였지만, 그때그때 할아버지가 도와주어서 우여곡절 끝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더운 날씨에 땀흘리며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느낀 게 많았고, 그걸 깨닫게 해주신 할아버지만큼 좋은 할아버지도 없을 것이다!

할아버지와 함께 고물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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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daum.net/moga2641 BlogIcon 모과

    상우할아버지가 상우에게 돈이 어떻게 힘들게 버나를 가르쳤군요.
    3번이나 힘들게 헌책을 주고 받은 돈은 친척들이 주고간 10000원보다 값지지요.?
    종로에서 와우아파트까지는 넘 먼데..종로에도 와우아파트가 있나요?

    • Favicon of http://blog.sangwoodiary.com BlogIcon 상우

      확실히 공짜로 얻은 돈보다는, 직접 힘들여서 얻은 돈이 더 기쁘고 값어치가 있는 것 같아요!
      와우 아파트는 모르겠고 그냥 가게 이름이 와우마트였어요.

  2. seob

    저희 외할아버지께서도 표정이 어두우신데
    상우형처럼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을까요?

  3. 개벽의 일꾼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버셨다니, 무척 소중한 경험을 하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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