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에 롤 케이크을 먹어요!

Posted in 일기 // Posted at 2010/08/02 08:32
<한밤중에 롤 케이크을 먹어요!>
2010.07.31 토요일

오늘도 얼마 남지 않은 이사를 대비해서, 아빠가 오랫동안 모아두었던 레코드판을 정리하기로 하였다. 레코드판은 수없이 많아서, 큰 책장 하나를 거의 다 채웠었다.

아직까지 그 갯수는 정확히 모르지만, 아무튼 종류도 많다. 클래식, 기타 연주, 가곡, 올드 팝! 얇은 레코드판을 쌓으니 내 키 정도의 탑이 세워졌다.

나는 그 옛날 <집현전 헌책방>에서 나랑 영우는 책을 보고, 아빠와 엄마는 박스에 든 낡은 레코드판을 고르셨던 기억이 떠올랐다. 또 내가 아플 때 소파에 끙끙거리고 누워 있으면, 아빠가 레코드판을 틀어주셨었는데... 우리의 추억이 묻어 있는 레코드판을 정리하는 것이 아쉬웠다.

아빠에게 "아빠, 이 많은 것을 도대체 어떻게 처분하시려구요?" 하고 물었다. 아빠는 "음~ 가지고 싶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거란다!" 하셨다. 나는 조금 기분이 허무하였다. 아빠, 엄마가 몇 년 동안 애지중지하면서 모은 건데 사람들에게 공짜로 나누어 준다니!

나는 아빠에게 "그냥 공짜로요? 이거 한 장당 100원만 받아도 꽤나 큰돈이 모일 텐데요?" 하고 아빠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하지만, 아빠는 "흠~ 그럴까?" 하면서 싱싱 웃고만 계셨다. '하긴 어떤 사람이 레코드판을 꼭 가지고 싶었는데, 아빠가 그걸 무료로 드린다면 아마 고마워하면서 좋은 인연이 될 수 있겠지!' 나는 아빠의 웃음을 보고서 생각했다.

그래도 아빠가 힘들게 모은 걸 그냥 퍼주는 건 무언가 기분이 찜찜했다. 그리고 오늘따라 나는 무척 배가 고팠다. 저녁을 일찍 먹은 뒤 샤워를 하고 책과 참고서를 정리했는데, 열대야 때문에 꿉꿉하고 땀은 줄줄 흐르고 또 배가 고파진 것이다. 그래서 밤늦게 레코드판을 가지러 손님이 오셨을 때, 나는 모르는 척하려고 영우와 같이 내 방에 들어가 문을 닫아 버렸다.

띠띠뚜~ 손님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하하하! 안녕하십니까?", "아, 이런 걸 다 공유해주시고 정말 감사합니다!", "뭐, 이런 걸요!", "빈손으로 오기 뭐해서 별건 아닌데, 이거 좀 가져왔습니다!", "아니, 뭐 이런 걸다~ 감사합니다! 맛있게 먹을게요!" 하는 대화가 오갔다. 나는 손님이 무언가 먹을 것을 가지고 왔다는 말에 귀가 번쩍 띄면서, 기뻐서 나도 모르게 문을 열고 나왔다.

나는 아저씨에게 고개를 90도로 숙여 "안녕하세요!" 인사하였다. 아저씨도 "안녕하세요!" 하며 친절하게 인사를 받아주셨다. 슬쩍 아빠의 손에 들려져 있는 것을 보니, 아저씨가 가져온 것은 네모난 빵 봉지였다! 아빠는 레코드판을 아파트 현관까지 다섯 번 쯤 날라다 주셨다. 그날 늦은 밤, 우리 가족은 그 아저씨가 가져온 롤케익을 우유와 함께 맛있게 먹었다. 나는 부드러운 롤케잌을 우유에 적셔 먹으며 생각했다. '이런 게 사람 사는 정이로구나!'

한밤중에 롤케잌을 먹어요!


집현전 헌책방 http://blog.sangwoodiary.com/140
상우일기 - Sangwoo 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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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eob

    상우형 아버지는 정말 친절하신 분이시네요.

  2. Favicon of http://blog.daum.net/moga2641 BlogIcon 모과

    와! 상우의 아빠가 참 멋지고 음악도 좋아하는 분이군요.
    상우가 이렇게 지혜롭고 총명한 어린이로 자진 것은 모두 아빠 엄마 때문이예요.
    어디로 이사를 가나요?
    음악을 좋아 하는 아빠, 늘 음악을 틀어 주었던 모습이 상상됩니다.
    상우가 어떻게 자랐나 상상이 되는군요.
    모과 할매가 상우 아빠 멋지다고 했다고 전해 주세요.^^
    배려와 나눔을 실천으로 보여주셔서 고맙다구요.
    상우가 이다음에 무엇을 하던 간접적으로 나도 혜택을 받거든요.

    • Favicon of http://blog.sangwoodiary.com BlogIcon 상우

      모과님, 저희 아빠를 멋지다고 해주신 것 감사드려요.
      아빠께 모과님의 칭찬을 전해드렸더니, 부끄럽고 쑥스러운 표정으로 감사하다는 말씀 전해드리래요.^^
      며칠 뒤면 종로에 있는 외할머니댁으로 이사를 간답니다.
      그래서 가족과 함께 음악을 들으며 짐을 싸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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