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삼계탕 집

2010. 7. 27. 08:20일기

<이름 없는 삼계탕 집>
2010.07.25 일요일

오늘은 8월에 이사할 할머니 댁에 겨울옷을 정리하러 갔다. 옷걸이를 설치하고, 그 많은 옷을 걸어놓는 일은 가족이 도와가며 하니, 착착 진행되어 빨리 끝났다. 일이 끝나고 할머니께서는 더운 날씨에 우리 몸보신 하라고, 유명한 <토속촌> 삼계탕을 사주신다고 하였다.

토속촌은 할머니 댁에서 몇 골목만 돌아가면 나오는 곳인데, 작년 이맘때도 사주셔서 그 맛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그 맛에 이끌려 수많은 사람이 멀리서도 찾아온다. 먹는 데는 아주 오래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지만, 그 맛은 시간이 아깝지 않은 맛이다. 그렇지 않아도 삼계탕 노래를 불렀던 나와 영우는, 골목길을 힘차게 폴짝폴짝 앞서서 걸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기는 골목이 나왔다. 그 골목에 끝에는, 가게 입구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토속촌이 있었다. 벽을 따라 끝없이 늘어져 있는 손님의 줄과 함께! 나와 영우는 줄 맨 뒤로 가서 할머니와 엄마, 아빠를 기다렸는데, 어느새 이마와 등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할머니가 도착하시자, "이 줄을 한번 감상해 보세요!" 하였더니, 할머니는 "어매, 이래가지고는 어느 세월에 이걸 먹어? 아유, 안 되겠다! 그 집으로 가자!" 하셨다.

할머니가 말씀하시는 집은, 내가 4학년 때 갔던 집이었다. 그때도 할머니는 복날 토속촌 삼계탕을 사주려고 하셨었다. 그런데 그때도 지금처럼 사람이 너무 많아서 다른 삼계탕 집으로 대신 간 곳이 있었다. 너무 숨겨져 있고 토속촌에 밀려 이름도 기억나지 않았지만, 꿩 대신 닭이라고 그 집도 만만치 않게 맛있게 삼계탕을 했었다. 영우는 조금 실망하는 눈치였지만, 다시 힘차게 걸어나갔다. 토속촌을 벗어나니 골목은 또다시 한산해졌다.

할머니는 걸으시며 "멀리서 온 사람들이나 그렇게 긴 줄에 매달려서 먹는 거지, 동네에 사는데 왜 땀 뻘뻘 흘리면서, 그런 힘든 줄을 서서까지 먹어? 다음번에도 충분히 먹을 수 있는데~!" 하셨다. 드디어 음식점 건물이 나왔는데 작은 건물 안에 숨어 있는데다, 토속촌처럼 맛있는 냄새가 진동하지 않아 알아보지 못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무도 우릴 맞아주지 않았고, 손님은 없고, 차가운 선풍기 바람만이 횅하니 불고 있었다. 아빠는 "계세요? 계시나요?" 하였지만, 대답으로 들려오는 소리는 없었다.

할머니께서도 "누구 없슈?" 하셨지만, 그때도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아빠는 한 번 더 "저기요? 안에 계세요?" 하고 물어보셨다. 그제야 "네에에~" 앞치마를 쓴 아줌마가 주방에서 부랴부랴 달려나오셨다. 우리는 구석진 방 안으로 들어가서 앉았다. 썰렁한 집에 손님은 우리 가족, 그리고 주방에서 울리는 설거지 소리와 에어컨이 올라갔다 내려가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우리 가족은 '한방 보약 백숙'과 '녹두 삼계탕'을 시켰다.

음식이 나오고 할머니께서는, 국자로 닭고기를 한가득 담아 아빠, 영우에게 퍼주셨다. 나는 우리에게 먼저 주시는 할머니께 미안해서, "할머니께서 먼저 드세요!" 하였다. 할머니는 "대장부들 먼저 먹어야지!" 하셨다. 아빠도 할머니께 "아유, 어머니, 이 다리 한번 드셔 보세요!" 하였지만, 할머니는 "다리는 남자들이 뜯는 거야! 상우를 줘! 여자들은 가슴살을 먹어야지!" 하시며 아빠가 떠주신 닭다리 접시를 나에게 건네주셨다. 할머니는 닭의 뽀얀 살을 국물에다가 살짝 찍어, 입안에다가 한입에 넣고 코오오옴~ 소리를 내셨다. 그리고 입술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씰룩씰룩 하시며, "음, 맛은 참 좋은데, 토속촌 근처에 지어서 장사가 안되는구만!" 하셨다.

아빠는 고기를 젓가락으로 집어 오른쪽 이빨로 탁! 깨문 뒤, 살을 찢어 입안에 넣고 호오호오~ 하셨다. 엄마는 고기를, 사과를 먹듯이 크게 앙~ 베어 물었다. 영우는 고 작은 입안에 고기를 한꺼번에 넣고, 쯥깍쯥깍, 우물오물~ 볼을 부풀려가며 먹었다. 난 처음에는 할머니 앞에서 품위를 지키려고 젓가락으로 고기를 집어 한입씩 짝짝~ 먹었다. 하지만, 나의 본능이 어디 가겠는가? 어느새 늑대처럼 닭다리를 오른손에 들고 입으로 쥐어뜯으며 으에으~! 사냥하듯 먹었다. 입에 묻은 고기 국물을, 가끔 내가 입은 반소매의 늘어난 목 부분으로 닦으며, 그냥 삼계탕의 맛에 취해버렸다.

이름 없는 삼계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