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에서 겪은 크리스마스

Posted in 일기 // Posted at 2009/12/25 18:45
<용산에서 겪은 크리스마스>
2009.12.24 목요일

우리 가족은 저녁 7시 30분, 서울 용산 참사 촛불 예배 장소를 찾아 헉헉 뛰었다. 지하철역을 쭉 따라 내려가 골목 한 모퉁이로 꺾어 들어가니, 불에 탄 네모난 상가 건물이, 괴물처럼 시커멓게 입을 벌리고 서 있었다.

그 건물은 마치 폭탄에 맞은 것처럼, 살은 다 찢어지고 시멘트벽과 기둥이, 꺾어지고 부러진 뼈대처럼 처참했다. 나는 순간 겁을 먹은 눈으로 불타버린 건물을 바라보며, 찬송가 소리가 울려 퍼지는 골목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용산에서 겪은


좁은 골목 안에는 벌써 많은 사람이 참석해, 플라스틱 의자를 다닥다닥 붙이고 앉아, 촛불 예배를 막 시작하려는 참이었다. 눈에 띄는 자리가 없어 두리번거리다, 중간쯤에 반가운 이웃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앉아 계신 것이 보여 마음이 놓였다. 도로가 보이는 맨 앞쪽에 단상과 스크린이 보이고, 그 앞에 어떤 누나가 서서 노래를 부르며 예배를 진행했다. 나는 골목을 둘러싼 상가 건물 벽마다, 깃발처럼 펄럭이는 현수막으로 자꾸 눈이 갔다. '이명박 정부는 사죄하라!', '세입자는 무죄, 이명박은 유죄!', '세입자 다 죽일거냐?' 같은 절절한 문구들이 진짜 말처럼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우리는 작은 유리잔 안에 든 초를 급하게 사서 하나씩 들고, 각기 흩어져서 예배를 드렸다. 난 처음에 초를 받아들고 어떻게 불을 붙이나 했는데, 바로 옆에 앉은 아저씨께서 자기 초를 기울여 불을 붙여주셨다. 촛불은 금세 옮겨붙어 작은 점처럼 시작해서, 한 번에 확~ 예쁘게 피었다. 나는 자리가 없어서 그냥 서서 예배를 드렸다. 스피커를 통해 울리는 어떤 아주머니의 간절한 이야기와 신부님의 연설을 들으며, 두 손으로 감싸쥔 작은 촛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촛불을 바라보니, 일렁거리는 촛불 속에서 용산 참사 당시에 상황이 어른어른 보이는 것 같아서 슬프고 고개가 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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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위 사람 모두 그런 슬픈 기분이 드는지, 여자들은 흠흠~ 흐으~ 훌쩍이며 손수건으로 눈을 톡톡 훔쳤고, 남자들은 하아~ 하~ 거칠게 숨을 내쉬고 눈을 끔뻑이며, 손가락으로 눈을 비비면서 눈물을 닦아냈다. 나도 부서진 건물을 다시 한번 쳐다보니, 자꾸만 그때 상황이 그려지며, 불길 속에서 살려달라고 절규하는 용산 참사 가족들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그러자 나도 참지 못하고 눈물을 쏟고 말았다. 나는 촛불을 오른손에 들고, 왼손으로 안경을 올려서 옷 소매로 눈물을 쓱~ 닦았다. 그러자 동글동글한 눈물이 옷 소매에 묻어 넓게 퍼져, 내 옷소매는 국물이 묻은 것처럼 짙은 색으로 변했다.

거의 모든 사람이 나처럼 눈물을 흘렸고, 어떤 아저씨는 눈물에 콧물까지 범벅되어서 얼굴이 빨개진 채로 울었다. 모두가 정성을 다해 기도하고 눈물을 흘리니, 이 자리가 꼭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는 곳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계속 두 손으로 촛불을 감싸쥐고 촛불을 바라보며 기도하였다. '하느님! 내일은 바로 사람들이 크리스마스라고 부르는 날, 즉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입니다! 모든 인류가 소중한 축복을 받는 날이죠. 그날만큼은 아무리 구두쇠에 마음씨 나쁜 스크루지도 변하고, 잘살건 못살건 모두가 형제 같은 날인데, 이날 가장 축복을 받아야 할 용산의 약자들이 이 자리에 없습니다!

강자들의 무자비한 횡포에 몰려 비참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오직 살 곳을 지키기 위해 살려고 발버둥쳤던 절박한 사람들 아니었습니까? 죄 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오신 아기 예수님과 더불어,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지금 가장 축복받아야 할 사람들인데, 그들은 이미 이 세상에 없습니다! 하느님! 하늘에서 그들의 영혼을 살피시고, 그의 가족들은 보살피소서! 그리고 그들을 이렇게 만든 자들을 심판하여 주십시오~!' 기도를 마친 후, 단상 밑에 놓인 영정 사진 앞에 촛불을 놓고 유족들을 위로해주는 시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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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장례 행렬처럼 길게 줄을 서, 조용히 눈물을 훔치며 차례차례 봉헌을 하고, 유족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나도 쓸쓸해 보이는 영정 사진 앞에 촛불 하나를 놓아두고, 용산참사 유족들 한명 한명과 손을 잡고 "힘내세요!"라고 말해드렸다. 가운데 서 계신 제일 나이 많은 할머니 손을 잡으니, 내 동생 손보다 더 깡마르고 그냥 흐물거리는 나뭇가지 같아서, 가슴이 저려왔다. 마지막에 서 계시던 나이 든 아주머니는, 나를 와락 끌어안고 "고맙다~ 얘야~!" 하고 목놓아 눈물을 터뜨리셨다. 나도 아주머니를 꼭 안고 "힘내세요~ 잘 될 거예요~" 하며 울먹울먹 말했다.

촛불 예배가 끝나면서 보너스로 용산 참사 당시의 상황을 담은 동영상을 보여주었는데, 소리가 너무 크고 처절하여, 주위에 있는 전경차와 전경들이 다시 달려들지 않을까 긴장이 되었다. 끝나고 나오는데, 골목 입구에서 산타복장을 하고, 사탕을 나누어주는 키가 큰 외국인 아저씨가 나에게 사탕을 쥐어주며 "용산 참사, 해결합시다!" 하고 부드럽게 말해서, 나도 "해결합시다!" 하고 답했다. 이 땅에서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될 사건 용산 참사지만, 그 일을 애도하고 위로하러 온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나는 감동하였고, 지금까지 따뜻한 교회나 성당에서 떡을 나누어 먹으며 성탄 예배를 드렸었는데, 오늘 폐허가 된 용산 골목에서, 정말 위로받아야 할 사람들을 위로하며 기도한 것이, 진짜 성탄절 예배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우일기 - Sangwoo 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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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차안고니

    한해가 가기 전에 꼭 들려야겠다는 생각을 이 날 실행한 보답으로
    상우를 만나게 되었구나. 반가웠어요 ^__________^
    어쩜 현장의 느낌을 이렇게 잘 표현해 날 수 있을까?

    앞으로 그 마음이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심어 꽃 피우는 힘이 될 것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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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 차안고니님, 안녕하세요?
      저도 어제 아저씨를 뵙게 되어 반갑고 기뻤답니다!
      보라색 모자를 쓰시고 꼭 인크레더블에 나오는 아이스 맨처럼 멋지셨어요.^^
      칭찬해주셔서 감사드리고, 오늘이 얼마 안남았지만 저는 1년 내내 메리 크리스마스! 하고 싶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2. Favicon of http://blog.daum.net/mylovemay BlogIcon 실비단안개

    잘 읽었습니다.
    어른들이 상우군을 많이 아프게 해서 미안합니다.
    상우군이 어른이 되었을 때, 우리나라는 지금보다 좋은 나라가 되겠지요.
    마음이 건강한 어른으로 자라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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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비단안개님, 오랜만에 반갑습니다!
      잘 지내셨나요?
      용산 참사 현장이 몹시 슬프고 가슴 아팠어요.
      그래도 세상에는 좋은 어른들이 많이 계신 것 같아요.
      그래서 희망을 갖고 미래를 꿈꿀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3. seob

    그런일이 있었군요.
    참 안타깝다.ㅠㅠ

  4. Favicon of http://www.puwazaza.com BlogIcon 뿌와쨔쨔

    상우형님 잘 지내셨어요?
    용산참사 현장에 다녀오셨군요. 상우님의 높은 식견과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이 어디서 나오나 했는데, 가족분들과 함께 용산에도 다녀오시고,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연말연시 잘 보내시구요 앞으로도 유익하고 한번쯤 내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상우일기' 기대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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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그~ 뿌와쨔쨔님, 형님이라고 부르시는 바람에 또 한번 누가 볼까 헉~ 놀랐어요.^^
      크리스마스하면 캐롤과 반짝이는 트리와 맛난 음식만 알다가, 용산에 가서 촛불 예배를 드리고 제 자신이 부끄러웠답니다.
      뿌와쟈쨔님도 새해에는 세계를 주름잡는 멋진 블로그 활동하시기를 기대할게요!^^

  5. somigi0604

    용산참사 한동안 떠들썩 하였죠....
    정말 안타까운 일이예요
    사회...아직까지는 강자에게 밀릴수 밖에없는 안타까운 현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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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산참사가 우리 마음 속에서 잊혀지면 안될 것 같습니다.
      사회에서 가진자가 없는자를 핍박한다면, 그건 강자가 아니고 나쁜자 같은데요!

  6. 김경호

    그날 상우를 만날 수 있어서 참 좋았어요. 상우가 준 치즈케익도 맛있게 먹었어요. 이렇게 인사가 늦었네요. 상우의 놀라운 글들을 보면서 우리 나라가 참 소망이 있다고 생각되요. 상우를 통해서 미래 세대의 생각을 볼 수 있어 마음 든든하게 생각합니다.
    좋은 글쓰기 계속해주세요. 새해에는 상우와 만남이 깊어지기를 바라요. 김경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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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아! 김경호 목사님, 안녕하세요?
      이렇게 제 블로그를 찾아주셔서 깜짝 놀랐어요!
      목사님께서 찾아주시니 저는 새해 처음부터 큰 선물을 받은 것처럼 신이 나네요.^^
      저도 정의롭고 참된 목사님의 가르침을 본받고 싶답니다.
      목사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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