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을 말리신 아빠

Posted in 일기 // Posted at 2009/12/07 09:00
<싸움을 말리신 아빠>
2009.12.05 토요일

우리 가족은 오랜만에 찜질방에 갔다가, 배가 고파서 미역국을 먹으려고 찜질방 안에 있는 식당에 들어갔다. 우리가 자리에 앉고 나서 얼마 뒤에 어떤 아저씨가 씩씩거리며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그 아저씨는 식당 가장자리쯤에서 밥을 먹는 어떤 손님에게 달려들듯이 다가가, "야 이 XX 년아, 새파랗게 젊은 년이 어디서 눈을 부라려? X 년아!" 하고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부었다.

나는 도대체 무슨 일이지? 하고 얼굴이 후끈하고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는데, 급기야 쨍그렁! 하고 컵이 떨어지는 소리가 나며, 싸움은 불붙듯이 커지고 말았다. 나는 너무 놀라 자리에서 일어날 뻔하였다. 우리 아빠 나이 또래로 보이는 몸이 마른 그 아저씨는, 고등학생 정도로 되어 보이는 누나에게 목에 힘줄이 보이도록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당장에라도 때릴 기세로 손을 올리며 욕을 쏟아냈다.

아저씨가 하도 흥분을 해서 무슨 말인지는 잘 못 알아듣겠지만, 아저씨의 어린 아들이 장난을 치다가 그 누나와 부딪혀서 다쳤는데, 그 누나가 사과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 같았다. 둘 다 잘못이 있는 것 같았지만, 아저씨는 미친 듯이 화를 내며 누나의 얼굴에 컵에 있는 물을 뿌리기까지 했다. 나는 예전에 아빠에게 들었던 '어른들이 싸우면 큰일이 난단다!' 하는 말이 생각나 더 겁이 났다.

내가 고등학생 정도만 되었어도 지금 아이들 싸우는 거 말리는 것처럼 말려볼 텐데, 나는 너무 작고 상대는 큰 어른이어서 불안에 떠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영우도 겁에 질려서 이마에서 식은땀을 주르륵 흘리며 입을 주머니처럼 벌리고 울려고 했다. 아저씨가 그렇게 일방적으로 누나에게 위협을 가하고 식당 안이 떠들썩한데도, 눈살을 찌푸리며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도 선뜻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식당 안에는 키가 큰 젊은 형이나 아저씨가 꽤 많았는데도 말이다. 나는 도덕 시간에 이웃 간의 정에 대해서 배우는 이유를 알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긴장하면서 쳐다보기만 하는 사람들을 보니 안타깝고 속이 상했다. 그 순간 아까부터 지켜보시던 아빠가 벌떡 일어나서, 팔을 휘두르며 난동을 부리는 성난 아저씨의 어깨와 팔을 감싸 안듯이 막아서며 "어른이 몸으로 싸우면 되나요? 말로 하세요! 말로!" 하고 단호히 말했다.

그러자 아저씨가 더욱 세게 저항하며 "저 새파란 년이, 글쎄 기집새끼애가, 우리 애기가 다쳤어, X 발! 당신이 뭔데, 참견이야? 내가 알아서 해!" 하고 소리 지르며 아빠를 뿌리치려고 막 밀었다. 아빠는 끝까지 아저씨를 놓지 않고 그 누나로부터 아저씨를 멀리 떼어놓으려 했다. 그러자 그제야, 주위에 아저씨 서너 명이 일어서서, 함께 아저씨에게 달라붙어 아저씨를 누나로부터 멀리 떼어놓았다.

아저씨를 식당 입구까지 떼놓은 뒤에도 다시 돌아와 소리를 지르고 흥분해 수건을 던지며 난동을 부렸지만, 그때마다 아빠가 제일 먼저 일어나서 아저씨를 끌어안고, 소가 뿔싸움을 하듯이 밀고 밀리며 강력히 말렸다. 나는 그때마다 아빠가 다치면 어떡하나! 가슴이 조마조마하면서도, 아빠가 자랑스럽고 멋지단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올 때, 아빠가 말씀하셨다. "상우야, 무서웠니?", "아뇨~ 하지만 키도 크고 힘은 세고 봐야겠어요!", "그 아저씬 왜 그렇게 심하게 화를 냈을까?"

"음~ 제 생각엔 그 아저씨가 그동안 살면서 가져왔던 미움이나 분노, 멸시, 열등감 같은 것들이 더 약한 상대에게 그런 식으로 폭발해서 나타난 것 같아요.", "그렇구나, 아빠가 걱정한 것도 그 부분이야. 어쩌면 그 아저씬 관심을 원했는지도 몰라. 그런 난폭한 사람에게 무슨 관심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사회는 각자 잘 먹고 잘사는 데만 열중해서 남의 고통이나 힘든 일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경우가 많아. 그런 분위기 속에서는 경제는 발전할 수 있어도 사람들의 감정은 더욱 메마르기 마련이지. 사람들이 싸움을 말리지 않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라고 보면 돼.

그런데 그럴수록 그런 아저씨 같은 사람들은 더 많이 생겨날 거야. 건강한 사회는 사람의 잘못된 행동을 매도하지 않고 이웃이 함께 치료에 힘쓰는 사회라고 생각한다. 너는 어떠니?", "네에~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잊지 마라, 아빠는 네가 세상을 제대로 보고 무엇이 옳은 것인지 잘 판단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명심하겠습니다!" 나는 그동안 아빠가 마음이 약하고 물렁한 분인 줄 알았는데, 오늘따라 아빠가 다른 사람처럼 보였고, 마음 깊은 곳에서 아빠에 대한 존경심이 뭉클뭉클 솟아나는 것을 느꼈다.

싸움을 말리신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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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ean Agatha

    상우님 아버님 너무 멋지십니다!

  2. seob

    와우 너무 멋지다~~
    ㅋㅋㅋㅋ

  3. Favicon of http://blog.daum.net/maisan2 BlogIcon 표고아빠

    상우군 그림도 이쁘고 글도 참 잘쓰네요
    종종 와서 보는데 이 아저씨두 나중에 아이가 크면 꼭 이렇게 그림일기 함께 쓸 수있도록 하고 싶은 생각을 여기 보면서 하게 되네요

    • Favicon of http://blog.sangwoodiary.com BlogIcon 상우

      표고아빠님,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표고아빠님은 지금도 훌륭한 아빠시지만, 아기가 커도 함께 글쓰는 멋진 아빠가 되실 것 같아요.^^

  4. 노먼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어른이신 것 같습니다!

  5. 쑥생

    아버님이 존경스러워서 코멘트를 남기려다보니..
    글쓴이 상우 학생이 초등학생인 줄 그림을 보고 알았습니다
    초등학생의 일기라니? 믿기지 않습니다!
    아버님의 자랑스러운 행동도 놀랍지만
    상우 학생의 재능도 놀랍군요 ^^

  6. somigi0604

    역시 상우 아버님이시네~!

  7. Favicon of http://chohamuseum.net BlogIcon 초하(初夏)

    아빠 멋있으세요... 존경합니다!
    상우님의 좋은 글이 다 이런 이유와 뒷 배경이 있었군요. ^&^

    축하할 좋은 소식이 있어 전합니다. 글 엮었구요.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 Favicon of http://blog.sangwoodiary.com BlogIcon 상우

      안녕하세요? 초하님,
      좋은 소식을 이렇게 직접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초하님이 아니었으면 몰랐을거에요.^^
      저도 초하님이 베스트 블로그 100에 뽑히신 신 것 축하드립니다!

  8. 동하

    멋진아빠시군요!^ ^
    쓴 글을 보면
    분명 상우 군도 커서 멋진 어른이 될 것 같네요.
    글 잘 읽고 갑니다.

  9. 권상우같은반아이

    진짜 무서웠겠다..근데 너희아빠께서도 무서웠겠다

    • Favicon of http://blog.sangwoodiary.com BlogIcon 상우

      아마 그러셨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아빠는 싸움을 말리고 그 아저씨를 진정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신 것 같아.

  10. capdesigner

    상우는 참말로 좋겠다. 그리 든든하고 현명하신 아빠를 두어서.^^
    그런 상황에 처했을때 그렇게 당당하게 처신하시고 또 아들에게 제대로 된 교훈을 심어주신다는게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이거든. 정말 그렇단다.
    아버지말씀 명심하고 항상 귀담아듣는다면 앞으로 있게 될 사춘기도 너끈히 잘 보낼테고 평생을 존경하는 인물로 아버지를 자랑스레 말할 수 있게 될거야.^^
    흥미로운 일기 잘 읽었어요~

    • Favicon of http://blog.sangwoodiary.com BlogIcon 상우

      아, 감사합니다, capdesiner님,
      앞으론 아빠 말씀을 더 깊이 귀담아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11. 소시민

    우와! 대단하십니다. 부전자전이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12. 모나미

    정말 대단하시네요! 만약 저라면 그냥 지나칠텐데~~~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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